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밤 10시40분. 고광신(56)씨가 집을 나서는 시간이다.
"일주일에 3일은 이 시간에 출근해요. 꽃이 들어오는 날이기 때문이죠."
20분쯤 달리면 30년 동안 땀흘린 일터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화훼상가에 다다른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화훼상가에는 매주 일요일, 화요일, 목요일은 꽃이 들어오는 날이다. 시장 상인들은 일주일에 3일은 밤 11시 정도에 출근한다. 이외에는 새벽 6시경 출근한다.
3층에 오르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상인들을 마주할 수 있다. 드라마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오늘 판매할 꽃에 대한 이야기 등 주제는 다양하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화훼상가 오픈전 모습/박인웅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화훼상가 오픈 전 상인들이 판매할 꽃을 정리하고 있다./박인웅
밤 11시45분 "들어가세요"라는 소리에 약 190개 점포 상인들은 일제히 자리를 찾아 나선다. 어두웠던 공간에 불이 들어오고 적막이 흐르던 곳에 사람들로 북적인다. 시간은 자정을 가리키고 있지만 대낮인것처럼 환해진다.이때부터 판매하는 꽃을 정리하는 상인들 사이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도매상들이 구매할 좋은 물건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고속터미널 화훼상가는 자정에 문을 열고 오후 1시에 문을 닫아요. 개장하고 새벽 2시정도까지는 전국의 꽃 도매상이 시장을 찾아요. 그 다음 아침 7시까지는 소매상인들이, 오전 10시~오후 12시에는 꽃을 좋아하는 아주머니들이 오지요."
자정을 막 넘긴시간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도매상들은 각자의 정리 노트를 확인하며 꽃의 종류와 상품의 질 등을 확인 후 구매 결정을 한다. 여러 가게를 돌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꽃을 찾아 나선다. 구매가 완료된 꽃이 많은 양이면 박스로, 적으면 신문지로 포장을 한다. 겉에다 도매상의 지역을 표시해 둔다. 카트를 끌고 다니는 용달 아저씨가 가게를 돌면서 도매상들이 구매한 꽃을 움반한다.도매상들은 트럭채로 물건을 떼간다.
"도매상들이 구매한 제품에 지역을 표시해 주면 용달하는 사람들이 한 번에 가지고 가요. 용달 이용은 꼭 도매상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어요. 구매한 영수증을 모아 용달하는 사람에게 갖다주면 그들이물건을 주차장까지 배달해줘요. 꽃시장에 와서 구매할 물건이 많으면 이용해보세요."
도매상들 사이로 아주머님 두분이 하얀 국화를 구매하러 왔다. 아주머니들이 국화 봉우리가 크지 않다고 하자. "오늘 사서 국화를 물에 담궈두면 일요일에는 봉우리 큰 국화를 사용할 수 있를 거에요."라며 친절하게 안내도 해줬다.
고씨가 갑자기 가게를 비우고 어딘가로 걸어 갔다. 도착한 곳은 다른 꽃 가게였다. 그곳에서 안개꽃 한 박스를 들고 가게로 돌아왔다. 그는 "꽃시장 가게마다 판매하는 꽃의 콘셉트가 있어요. 주인이 팔고 싶은 꽃들을 주문하는 시스템이에요. 파는 품목이 정해져있지는 않고 그날그날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골이 구매하고 싶은 꽃이 있는데 저희 가게에서 팔지 않으면 다른 가게에서 구해주곤 해요."
도매상들이 휩슬고 지나간 자리는 잠시나마 진정이 된다. 이내 친한 상인들 몇명이 모여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30년 경력의 그에게 시장 상인들은 가족과도 같은 사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그가 다시 가게로 돌아와 정리를 했다.
그는 "1986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하차장이 있던 1층에 있었죠. 1990년대가 꽃시장 호황기였죠. 그때는 사람들이 꽃도 많이 사고, 선물도 하고 그랬어요."
언제가 힘들었냐는 질문에 " IMF 외환위기 시기였어요. 정말 꽃시장이 침체기였죠. 그때는 다 아껴야 했기 때문에 꼭 필요한 물건 위주로 구입하다보니 꽃이 구매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지금은 많이 활성화가 됐어요. 특히 웨딩 쪽이요. 그런데 아직까지 꽃은 사치라는 생각을 하는것 같아요. 화환에도 제한도 있어서……. 90년대 처럼 다시 꽃시장이 활력을 찾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