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저성장·저출산의 덫에 빠지면서 연금 개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국민 2156만명이 가입한 국민연금의 재정이 오는 2060년 바닥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면서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연금 제도론 가까운 시일 내에 청년층이 납입한 돈을 노년층에게 연금으로 지급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우리보다 앞서 연금제도를 도입한 미국과 유럽에선 이 문제로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고령화시대, 국민연금에 대한 개혁 논의와 정책적 합의가 시급하다.
지난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한국 사회 직장인들의 대표적인 노후대비책으로 꼽힌다. 정부는 "국민연금은 국가가 지급하는 것이므로 안정성이 뛰어나다"고 강조하며 국민들의 가입을 부추겨 왔다. 해를 거듭할수록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증가해 오는 2060년이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9명이 연금을 받게 된다.
문제는 이에 따른 연기금 고갈로 가입자들의 월 보험료 인상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수급나이도 처음 도입 당시에는 만 60세였지만 1969년 출생자부턴 만 65세로 늦춰졌다. 국민연금 개시 나이를 늦추지 않으면 국민연금이 더욱 빠르게 고갈될 것이라는 게 관리공단의 설명이다. 도입 초기 가입자와 현 가입자 간 형평성 논란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일부 가입자들은 "매달 급여에서 연금 명목으로 떼가더니 나중에 나이들어선 연금을 못 받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사회 전반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가운데 정치권에서 최근 보험료율 인상보다 연기금을 활용한 공공투자 확대를 적극 주장하고 나섰다. 관련 법안 추진을 위한 채비까지 마쳤다.
◆더민주, 국민연금 공공투자 위한 법안 발의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국민연금 공공투자 특위 위원장은 이달 초 지난 20대 총선 당시 당이 경제민주화 공약 1호로 제시한 '국민연금 공공투자' 정책 추진을 위해 국민연금법과 국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위원장은 "국민연금 공공투자를 당론으로 지정하여 당 차원에서 법안 통과를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더민주 국민연금 공공투자 특위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은 오는 2040년까지 약 2500조원이 적립된다. 국내총생산(GDP)의 53% 수준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축적된 연기금이 채권과 주식 등 금융자산에 과투자되어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오는 2040년 2500조원에 이르는 연기금이 17년 안에 고갈된다는 점이다. 연기금이 보유한 주식과 부동산을 모두 팔아 현금화해야 된다는 것인데, 이 경우 금융과 부동산 시장의 폭락 등 실물경제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당은 이에 따라 연기금을 유동화에 따른 경제적 충격 최소화를 위해 새로운 투자처 발굴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위는 "저출산 문제로 국민연금 납입자보다 수급자가 더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며 "연금의 공공투자는 경기변동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장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며 연기금의 유동성 문제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여 국민연금의 납입자를 늘려 기금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사연 "연기금 활용? 어불성설"
더민주당이 국민연금기금을 저출산 문제 해결에 활용하자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지난 19일 한 국책연구기관은 이를 반박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종욱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출산율 제고의 국민연금재정 안정화 기여수준평가'에 따르면 보고서는 출산율 제고 정책을 국민연금재정 안정화에 연계시키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국민연금재정 안정화는 보험료 인상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일침했다.
원 선임연구원은 국민연금 공공투자를 통해 출산율을 제고하겠다는 더민주의 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원 선임연구원은 "국민연금기금을 채권투자방식으로 공공투자해 출산율이 증가할 경우 누적 추가보험료 수입이 발생하겠지만 기금 고갈을 1년도 연장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공투자가 출산율 제고로 이어진다 해도 재정안정화를 해결할 수 없다"며 "오히려 투자된 국공채의 현금화가 어려워져 실질적인 고갈시점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선임연구원은 "저출산정책에 필요한 재원은 조세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는 출산율 제고와 함께 오는 2018년 제4차 재정 계산 이후 보험료 인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사회적 논의 절차나 과정을 생략하고 국민연금 투입 여부만을 가지고 먼저 갑론을박하는 것은 그나마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마저 뿌리째 흔들 수 있어 신중함이 요구된다"며 "국민연금 투자는 비록 그것이 공익적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목적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초고령사회의 안정적 노후 소득 보장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에 따라 공공투자도 국민연금 고유의 목적을 실현하는 방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