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우여곡절 끝에 합헌 결정을 받았지만 곳곳에서 법 개정 촉구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제적 파장 우려에 따른 '3·5·10만원' 가액 수정과 농·축·수산물 업종 제외를 요청하는 행정부 및 각계의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법 적용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하자는 개정부터 법 시행 후 사법기관의 과잉 수사 우려까지 쟁점이 될 만한 불씨가 산적해 있다. 행정·입법·사법 등 우리나라 3개 권력이 모두 부패 청산의 시험대에 든 셈이다.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 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합헌 결정한 가운데 7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국농축산연합회 황태수 사무총장이 한우 5만원 세트 실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뉴시스
한국농축산연합회 회원들이 7월 2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에서 김영란법 과잉규제철폐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현실성 없는 가액, 경제 부작용 낳는다?
7월 31일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내수경기 위축 우려로 '3만(식사)·5만(선물)·10만원(경조사)'의 가액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각계 업종의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권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김영란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가액 설정이 외식, 유통, 농축수산업계의 소비 위축을 불러 경제적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국회에 제출된 김영란법 개정안 4건 중 3건이 이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일각에선 관료 등의 청렴 의무를 강화하기 만들어진 김영란법으로 애꿎은 농사꾼만 피해를 보게 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쟁점은 헌재의 위헌 여부 대상에 포함이 되지 않아 합헌 결정 이후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는 가액 기준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적정선이라며 오는 9월 28일 시행일에 맞춰 이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정부 부처는 8월 중 김영란법에서 식사·선물 등의 기준액을 상향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된 정부입법정책협의회 개최 요청서를 법제처에 보낼 방침이다. 법제처는 지난달 29일 권익위로부터 입법 내용이 적법한지 등을 심의하는 심사요청서를 보낸 상태다.
다만 당장 국회가 이를 법 개정으로 이어가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 측은 "헌재가 시행령을 합헌으로 결정한 만큼 가액 범위를 직접 손질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소관 상임위 의원들이 정부에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는 방안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셈이다. 하지만 역시 시일이 적잖게 걸리는 데다 여야3당은 일단 법 시행 후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이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영란법의 성공 여부가 입법부의 자정 능력과 사법부의 공정 수사에 달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7월 7일 오후 경북도 농업인단체협의회 회원이 대구 수성구 새누리당경북도당 앞에서 열린 '김영란법 개정 촉구를 위한 경북 농업인결의대회'에 참석해 김영란법 개정 촉구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쓴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뉴시스
◆입법 '자정'·사법 '공정'이 김영란법 좌우
법 적용 대상 범위도 뜨거운 감자다. 특히 헌재의 합헌 결정 이후 이 법에서 국회의원만 제외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부정청탁 예외와 이해충돌 방지 제외 등이 국회의원이 법망에서 빠져나가는 꼼수를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최종 통과된 시행령에 따르면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기준의 제·개정, 폐지 또는 정책 사업 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해 제안을 건의하는 행위'는 금지된 부정청탁 유형에서 제외됐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시도의원과 시민단체 등도 '예외'로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을 국회가 주도적으로 제외하면서 '국회의원만 김영란법에서 빠졌다'는 오해를 낳았다. 바닥까지 간 국회의 신뢰가 이 같은 오해를 부른 것이다.
예외조항을 제외하면 국회의원도 김영란법을 똑같이 적용받는다. 금품수수가 엮인 부정청탁을 받을 시 처벌을 받으며 '3·5·10만원' 상한선 제한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통째로 삭제됐다는 점이다. 당초 법 제정시에는 공직자가 '자신'과 '4촌 이내'의 친족과 연계된 업무를 방지하기 위해 직무에서 배제함으로써 공익을 사익보다 선순위에 두기 위해 논의됐다.
그러나 김영란법이 본회의 통과를 하기 전인 지난해 1월 정무위가 '적용범위의 모호성'을 이유로 이 부분을 제외했다. 김영란법의 탄생이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위해 발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회가 스스로 자정할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여야3당이 법 개정을 '시행 후 문제점이 발생하면'이라고 명시하면서 김영란법은 일단 당초 원안대로 9월 시행될 전망이다. 법 적용과 그에 따른 처벌 등 혼란도 즉각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대한민국이 불신 사회로 번져 사정 정국으로 물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검사의 처벌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고 자의적 해석 여지도 있어 '검찰권 비대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 무지에 의한 단순 위반자까지 모두 형사처벌 대상으로 하는 것이 국가 형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사법기관의 공정한 수사가 김영란법의 향후 성공 여부를 결정지을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