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vs 171.'
20대 국회의 수 싸움이 본격화됐다. 4.13 총선으로 몸집을 불린 야권(더불어민주당 123석·국민의당 38석·정의당6석·무소속 4석)이 '부자증세' 카드를 꺼내들어 정부·여당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20대 국회 초반 '여소야대'의 분위기를 이용해 19대 국회에서 정부·여당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법인세 인상 등 증세를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여야가 과거부터 첨예한 갈등을 벌여온 '증세' 논란에 불이 붙은 모양새다.
[b]◆여소야대 '증세전'…세수동결vs부자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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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민주는 저성장 극복을 위해 고소득자(소득세)에게 세금을 더 걷고 대기업 법인세율(법인세)을 회복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독자적 세법개정안을 공개했다. '부자 증세'로 서민에 대한 세제혜택을 강화해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소득세 과세표준 5억원 초과 구간에 대한 소득세율 구간을 신설하고 41%의 세율을 매기면서 고소득자에 대한 조세부담을 높였다. 또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 법인의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올려, 이명박 정부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방안도 추진한다.
반대로 서민·영세사업자를 위해서는 근로장려금을 상향조정하고 기회균등장려금제도를 도입하는 등 세제혜택을 강화했다. 영세자영업자의 경우 부가세 납부의무 면제한도를 상향해주고, 월세 세액공제율도 10%에서 15%로 확대하기로 했다. 성과공유제를 도입한 기업에는 세액공제 혜택을 도입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는 근로소득세를 최대 70% 감면하는 등 중소기업 대책도 포함시켰다.
변재일 더민주 정책위의장은 "정부는 부자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을 시도했지만 성장은 제로상태까지 내려갔다"며 "고소득 법인과 고소득 개인의 부담을 늘리고 중산층과 서민층에는 따뜻한 세법을 마련하겠다는 원칙 아래 개편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당도 법인세 인상 등 조세 전반에 대한 내부 검토를 거쳐 당 차원의 세법 개정안을 9월 초쯤 발표할 예정이다. 더민주와 각론에서 일부 이견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법인세 인상에는 동의하는 입장이어서 야권 공조 가능성이 나온다. 국회에는 이미 야권을 중심으로 법인세 인상과 관련된 법안(국민의당 김동철·더민주 박주민·윤호중 의원 등)들이 상당수 제출된 상태다.
반면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법 개정안은 사실상 '세수 동결'에 가깝다. 총 급여 1억20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신용카드 공제한도를 현행 300만원에서 내년부터 200만원으로 축소키로 했지만 소득세 세율 자체는 건드리지 않았다. 법인세 세율 체계도 현행 22%를 유지했다.
새누리당 역시 법인세 인상은 제품 가격 인상 등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고 기업의 투자 고용 위축을 불러 외국 기업 유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일 공개한 독자적 세법개정안을 놓고 새누리당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사진은 같은 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진석 원내대표가 김광림 정책위의장(왼쪽부터)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모습./뉴시스
[b]◆'수적열세' 與 vs 몸집불린 野…승자는?[/b]
하지만 새누리당은 거대 야권의 '증세 전면전'을 단순히 찬반 논쟁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반 이상 의석을 차지한 지난 국회 때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4·11총선결과기준)에서 152석을 차지하며 수적으로 우세했다.
하지만 20대에서 상황이 달라졌다. 계파 갈등 등으로 과반에도 못미치는 122석을 겨우 얻고, 최근 탈당한 의원들이 복당하면서 129석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수적으로 열세다. 일부 무소속 의원이 정부 여당에 찬성하더라도 여소야대 대세에는 변화가 없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어떤 현안도 본회의를 통과하기가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최근 야권 3당이 각종 현안을 놓고 틈만 나면 공조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여소야대의 변화된 기류를 가늠케한다. 오히려 야권이 공조해 표결처리를 시도할 경우 새누리당으로선 막아낼 재간이 없다.
증세 문제는 과거부터 여야가 가장 큰 입장차를 보여 온 문제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세법을 둘러싼 여야 간 정책 경쟁은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변 정책위의장은 "정부여당도 드러내고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이를 정부가 제시했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하지 않고 야당이 제시했다는 이유로 반대할 수는 없다. 기재위에서 정부여당과 충분히 대화하며 합의를 이끌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