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이나 커피숍처럼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곳에서 이상하지만 익숙한 광경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걸 보면 분명 서로 아는 사람들 같긴 한데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에 빠져서 무언가를 열심히 누르거나 만지기만 한다.
그런데도 이런 분위기를 전혀 불편해 하지 않는다. 혹시 누가 말을 건네더라도 눈을 마주치는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누군가의 휴대폰이 움직이면 그 사람의 눈은 즉시 휴대폰으로 향한다. 상대방도 그게 자연스럽다는듯이 상대방의 휴대폰질이 끝나길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휴대폰으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서로 휴대폰을 보며 웃거나 심각한 표정을 짓곤 한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았지만 대화를 나누지 않는 모습, 같은 공간에 있지만 멀리 있는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는 모습. 참 어색하지만 익숙한 풍경이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같은 개인화된 미디어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내렸다는 방증이다.
개인화된 미디어를 가능케 한 스마트폰과 다양한 사회관계망(SNS) 애플리케이션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을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그 동안 보고 싶었지만 연락이 안 됐던 친구들을 연락하게 해주고, 급한 일을 지시하거나 대답할 때도 유용하게 만들어줬다. 굳이 찾아가거나 전화를 하지 않아도 손가락 터치 몇번만 하면 된다.
옛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진짜 옛말이 됐다. 요즘은 말보다 빠르고 멀리 가는 게 SNS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수단들은 빛의 속도로, LTE급 속도로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얼마 전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터키의 사례만 봐도 SNS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쿠데타가 발생하자 수도를 비운 터키 대통령은 영상통화 앱인 페이스타임을 통해 CNN 투르크 앵커와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를 통해 국민들에게 쿠데타 군인들과 맞서달라고 호소한 게 쿠데타 실패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정보기술(IT)이, SNS가 쿠데타를 막은 세계 최초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최근 국내에서 이슈가 됐던 이화여자대학교의 직장인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 사업도 SNS가 좌초시킨 사례다. 당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이화여대 본관 점거시위 논의가 커뮤니티에 머물지 않고 페이스북을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가면서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의 진압과정이 생생하게 실시간으로 중계됐고 학교에 없는 졸업생들도 여론형성에 손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 일부 졸업생들의 지지가 인스타그램 등에서도 확산됐고, 결국 이화여대는 학생들의 여론전에 패배해 사업을 접었다.
한국YMCA전국연맹이 국토순례를 하면서 땡볕에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는 초등학생에게 물도 제대로 주지 않고, 고등학생 자원봉사자에게는 달리는 트럭에서 자전거를 수리하라고 강요했던 사실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돼 물의를 빚고 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엄연한 아동학대다. 인명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아울러, 큰 파장 없이 그대로 묻힐 뻔한 사건을 알게 해준 SNS가 기특하기도 하다.
하지만 SNS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 부작용도 낳았다. 한 가족이 모처럼 모여 TV를 보거나 식사를 하더라도 각자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항상 쥐어 있다. 가까이 있는 가족과 대화를 하지 않고, 멀리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휴대폰만 쳐다본다. 그리워하는 상대방을 만나면 할 말이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이미 할 말은 SNS로 다 했다. 실제로 만나면 또 다른, 멀리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SNS를 두드릴 것이다. 이런 SNS의 역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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