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과 숫자 몇 개가 대한민국 경제를 흥분케 하고 있다. 'AA'. 한국이 8일 국제 신용평가사 S&P에서 받은 역대 최고 신용등급이다. 중국보다 한발 앞서고, 영국과 프랑스와는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만큼 우리 국고가 튼튼해졌다는 의미다.
국가신용등급이 1등급 바뀌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선 국제무대에서 '노는 물'이 달라진다. 정부와 기업들은 조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통상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는 미국 재무부 증권(TB) 금리나 런던은행 간 금리인 리보(Libo) 같은 글로벌 기준 금리에 추가 금리(가산금리·Spread)를 덧붙여 빌려 온다. 부도 위험이 낮아진 만큼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다. 이는 신용이 낮은 사람이 은행에 더 높은 이자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 자금조달·산업 경쟁력 강화 기대
한국은행 '국제투자대조표(잠정)'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우리나라가 갚아야 할 대외채무는 3858억달러 규모다.
시장에서는 국가신용등급이 1등급 오르면서 연 이자비용이 약 4억~8억달러(4000억~8000억원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신용등급이 오르면 외화표시채무(외화증권 발행·차입금)의 가산금리가 10~20bp(1bp=0.01%포인트) 줄어드는 효과를 본다는 전제다.
국가신용등급이 상승하면 공공기관이나 시중은행, 대기업 신용등급 상승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또 개별 기관 신용등급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국가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면서 조달 금리를 낮출 수도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좋은 사례다. 5·10년 만기 미국 달러화 표시 채권 9억달러어치를 발행하기 위해 지난 7월(12일) 뉴욕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수요예측을 접수한 결과 총 240개 기관, 40억달러어치의 매수 주문이 쏟아졌다. 미국계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이 수요예측에 대거 참여했다. 경쟁률이 4.4대1까지 치솟으면서 채권 발행 금리가 애초 회사 측에서 제시한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결정됐다. 특히 10년 만기 채권 금리는 연 2.325%로 그간 국내 기업이 발행했던 글로벌 본드 가운데 최저치로 결정됐다.
국민은행도 지난달 2013년 이후 3년 만에 5억달러(약 5700억원)어치 외화채권을 발행했다. 3년 만기로 발행금리는 미 국채 금리에 0.875%포인트를 더한 연 1.724%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번 외화채권의 발행 가산금리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동일한 만기의 국내 시중은행 외화채권 가산금리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90개 기관투자가로부터 16억달러의 수요가 몰렸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수출 산업의 경쟁력과 해외 수주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자금 유입이 빨라지면서 건전성도 개선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월 기준 국내 은행의 단기 외화차입금 차환율(신규차입액/만기도래액)은 161.4%, 장기 차환율은 92.4%로 집계돼 대체로 안정적인 수준이다. 차환율이란 신규 차입액을 만기 도래액으로 나눈 수치다. 차환율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외화를 빌리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의미로 통상 해석된다.
자료 :블룸버그, 국제금융센터*노란색 표시: 위기시 고점이 가장 높은 국가의 CDS
간접적인 효과도 있다. 부도 위험을 알려주는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도 하락이 예상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부도 위험 정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7월 말 기준 50bp까지 떨어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8년 1월말의 77bp를 밑도는 것이다.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CDS 프리미엄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보다 낮아진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CDS프리미엄은 채권을 발행한 국가가 부도날 경우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금융파생상품으로, 부도 확률이 높으면 오르고 낮으면 떨어진다.
◆ 신용등급 상승만 믿고 있다간 낭패
하지만 국가신용등급 상승이 국가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신용등급이 올랐다고 당장 내수가 살아나거나 수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신용등급은 후행적 성격을 갖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은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차별화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국내 금융사, 공기업 등의 신용등급 상승으로도 이어져 해외 차입 비용 감소 등 대외안정성을 보다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도 불투명하다. 신용등급이 상향되면 주식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고 하락하면 그 반대다. 그러나 국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의 주식시장 영향은 과거 사례를 보면 불분명한 편이다. 특히 미국이 기준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 하고 있어,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신용등급 상승했다고 한국경제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아니다"면서 "기업 구조조정과 산업경쟁력 강화 등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가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