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르네상스'에서는 경복궁 옆 서촌의 변화를 담으려고 합니다.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 서촌은 조선시대 중인과 서민이 살던 곳으로 조선 후기 문예부흥의 중심지입니다. 요즘 서촌에서는 다시 문화가 꽃피고 있습니다. 수백년의 간격에도 서민 중심의 '생활 속 문예부흥'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거 인사동이나 북촌 마냥 우후죽순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하나하나 문화 생산자들의 독특한 기지가 넘쳐납니다. 운이 좋게도 메트로신문사가 서촌으로 이사한 덕에 서촌의 골목은 출근길이자 산책길이 됐습니다. 매일매일의 경험을 기록해 서촌 가이드북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옥류동천 산책길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찾는 곳이자 서촌 르네상스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입니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에서 시작된 하천인 옥류동천을 따라 난 길인데 지금은 복개돼 과거 옥빛의 시냇물(玉溪)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다만 굽이치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감이 옵니다. 하천이 아니고서는 만들지 못할 유려한 곡선이거든요.
조선 시대라면 멱을 감는 아이들과 빨래하는 아낙들로 넘쳐났을 한여름입니다. 평소라면 이 글을 읽고 찾아올 분들을 위해 하천의 하류 지점인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에서부터 소개를 시작했을 겁니다. 옥류동천과 백운동천이 합류하는 곳입니다. 대로를 벗어나 굽이치는 복개천길이 시작되는 곳이라 찾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살인적인 무더위에 지친 나머지 시원한 물줄기가 복원된 수성동 계곡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인왕교통의 9번 마을버스 종점이 있으니 버스에서 내려 거꾸로 내려오며 구경하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수성동 계곡에는 70년대 지어진 옥인시범아파트가 있었는데 종로구가 이를 헐어내고 2012년 여름 과거의 모습을 복원시켰습니다. 과거의 모습인지 어떻게 아냐구요? 300년전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하나가 수성동 계곡의 그림이거든요. 계곡 앞에 세워진 안내판 속 겸재의 그림과 복원된 계곡의 모습은 거의 비슷합니다. 특히 계곡 사이 조그만 돌다리가 그렇습니다. 참고로 장동팔경첩의 '장동(壯洞)'은 조선후기 세도정치의 주역인 '장동 김씨'의 그 장동이 맞습니다. 서촌 일대의 조선시대 명칭이라고 하네요. 학창 시절에는 '안동 김씨'라고 배웠는데, 그 많은 안동 김씨가 세도를 부린 건 아니니 장동에 터를 잡고 세도가로 성장한 '장동 김씨'를 특정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옥류동천길을 따라가는게 목적이니 계곡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하겠습니다. 우뚝 솟은 암벽의 인왕산을 뒤로 하고 내려가면 비운의 천재시인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하숙집이 골목 오른편에 있습니다. 당시에도 시인의 집이었다고 하네요. 좀 더 내려가면 왼편에 박노수 미술관이 보이는데요, 평탄하던 경사가 급해지는 통에 주말 데이트족들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구간입니다.
예전에는 수성동 계곡이 산책길의 끝에 자리하는 줄도 모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노수 미술관에서 조금 아래쪽에 자리한 한 카페 덕분에 그럴 분들이 줄 것 같습니다. 가게 전면 유리 한가득 산책길 코스가 그려져 있습니다. 수성동 계곡-서촌재 갤러리-윤동주 하숙터-누상어린이집-통인시장 정자-대오서점-이상의 집-우리은행 효자동 지점-경복궁역 2·3번 출구. 짧은 가게 홍보 문구는 구석에 자리했는데 "산책하러 오셨나요? 반갑습니다"로 시작합니다. 이런 재치 넘치는 가게들이 산책길 곳곳에 있습니다. '이런 가게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오늘 이야기의 종점이 나옵니다. 통인시장 입구의 정자입니다. 통인시장은 일제강점기인 40년대 일본인을 위해 세워진 시장인데요, 요즘은 유커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관광명소가 됐습니다. 시장 이야기도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정자 인근은 네거리인데 하천길은 정자 오른편의 곡선길입니다. 여기까지가 하천길의 절반인데요, 나머지 소개는 두번째 이야기에서 마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