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느리게 가는 자전거입니다. 쉽지만 균형 잡기가 힘들죠. 입맛에 맞는 먹거리만을 찾다가는 쓰러집니다."(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2013년 '2차 한국 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에 비유하며 저성장을 극복할 체질변화를 주문했다. 3년여가 지난 한국은 냄비 속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느리게라도 달리던 자전거(한국경제)가 멈추게 생겼다. 소리 없는 환율전쟁에 한국경제가 '골든 타임'을 써보지도 못하고 침몰할 위기에 처한 것.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환율 하락을 방관하면서 파운드화 가치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돈 풀기 정책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덕분일까. 미 달러화에 견준 원화 값은 10일 1000원대까지 내려갔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세계각국의 보호무역 강화기조 속에 근근이 버텨 온 수출 기업들의 주름살은 하나 더 늘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국회 처리를 미루고 있다.
1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95.4원으로 전일 종가보다 10.7원 내렸다(원화값 상승). 지난해 5월 22일 달러당 1090.1원(종가 기준)을 기록 이후 14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과 수출경합도가 큰 일본 엔화나 중국 위안화와 비교해봐도 원화 강세는 두드러진다.
급격한 환율 변동은 수출 등 실물시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국경제는 수출위주의 소규모 개방경제 구조 때문이다. 온기운 숭실대 교수의 '주요국 환율의 수출가격 전가율 비교분석과 시사점'이란 논문에 따르면 2009년 1분기 ~2013년 1분기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 전가율은 0.540였다. 이는 1차 절상시기(2002년 1분기∼2007년 4분기) 때 0.239보다 높아졌다. 수출가격 전가율이 0.54라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1% 하락(원화가치 절상)할 때 한국의 수출 기업들이 달러 표시 수출가격을 0.54% 올렸다는 의미다.
지난 7월 수출액은 410억4500만달러로 흑자를 냈지만,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다. 8월 수출 턴어라운드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년 대비 조업일수가 하루 반이 짧고 작년 7월에 선박 수주가 좋아 올해 7월은 마이너스겠지만 8월이면 좀 되지 않을까 한다"며 기대 섞인 전망을 했다.
하지만 원화값 상승으로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하반기 수출 회복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출 악화 주범인 글로벌 경기 침체와 저유가 기조 및 공급과잉 현상도 쉽게 개선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또 미국 등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강화 기조,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 가능성,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 등 곳곳에 암초가 널렸다.
문 닫는 가게와 공장이 넘쳐난다. 올해 6월 말 현재 대기업대출 연체율은 2.17%로 한 달 새 0.81%포인트 상승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현재 경기는 수요 부족으로 산업생산 활동이 위축되면서 경제 전반에 과잉공급능력이 심화되는 장기불황 국면"이라면서 "경제성장률 2%대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현재의 장기불황 국면에서 조속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수의 추가 침체를 방어하면서 수출에서 경기회복의 계기를 모색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민·관의 공조와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기업의 체질 변화를 주문한다.
노무라는 "앞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위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부채부담의 완화와 생산성 향상 등 개혁이 필요하다"며 과도한 신용 증가에 따른 비효율적 자원 배분과 낮은 생산성을 성장률의 정체 요인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