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페스트', 기대이상의 음악과 무대미술
스토리 전개는 설득력 떨어져
일명 '서태지 뮤지컬'로 개막 전부터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뮤지컬 '페스트'. 무대가 펼쳐지는 150분 동안 관객들은 첨단 미래도시를 경험하게 된다.
지난달 22일 개막한 뮤지컬 '페스트'는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원작으로 했다.
무대 배경은 첨단 미래도시인 오랑시티다. 기술적, 의학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미래, 원인불명 완치불가의 병 페스트가 발병한다는 설정이다. 생각지 못한 재앙 앞에 시스템이 제공하는 풍요 속에 살아온 시민들은 대혼란을 겪게 되고 그 속에서 페스트에 대항해 살아남기 위한 천태만상의 인간군상을 풀어냈다.
제작발표회 당시 노우성 연출은 시대적 배경을 미래로 설정한 것에 대해 "카뮈의 부조리 철학이 미래 사회에서 더욱 결여될 것이라고 보고 그때 시민의 저항의식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날거라 생각했다"며 "아울러 서태지의 음악적 특성과도 미래가 잘맞아 떨어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작품은 비참하고 잔혹한 현실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시대를 향한 진정한 '반항'이라고 이야기한다.
미래도시를 배경으로 한 만큼 무대미술이 눈을 즐겁게 한다.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는 정승호 무대디자이너의 오랑시티는 이번 뮤지컬의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 디지털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회색을 무대장치의 주색으로 사용했으며, 영상이 맺히는 부분에서 다양한 질감 표현이 가능하게 했다. 때문에 무대 벽면에 많은 영상이 띄워지는데, 모든 장치들이 시시각각 다르게 표현돼 다이나믹함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반면,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 일행의 주된 공간인 실험실과 식물원은 아날로그적인 무대로 꾸며 극명한 대비를 체감하게 한다.
뮤지컬 '페스트'의 가장 큰 특장점은 김성수 음악감독의 편곡을 거쳐 뮤지컬넘버로 재탄생한 서태지의 주옥같은 명곡들이다.
'너에게' '죽음의 늪' '시대유감' 'Live Wire' 등 서태지의 음악은 시대적, 정신적 가치를 담고 있다. 때문에 스토리를 엮어나가기에 충분하다. 무대 위 앙상블과 주연배우들은 랩, 힙합, 메탈, 록, 발라드와 클래식을 넘나드는 넘버를 소화한다.
서태지 원곡 특유의 감성은 그대로 살리돼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환상적인 연주로 무한 변주된다. 김상수 음악감독의 편곡으로 탄생한 서태지의 실험적인 록 음악과 클래식의 조합을 기대해도 좋다.
무대미술, 음악, 배우들의 열연은 흠잡을 곳 없지만, 아쉬운 점이라면 스토리 전개다.
주인공 일행 리유와 타루는 페스트에 맞서지만, 반면 코타르와 랑베르는 페스트를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뻔한 내용 전개는 후반부로 갈수록 뒷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거기다 리유와 타루의 갑작스러운 러브라인은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초연인데다 창작뮤지컬인 점을 감안하면 후한 점수를 기대할만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서태지의 음악과 무대미술은 훌륭했지만,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를 논하기에 스토리 전개는 미흡했다.
9월 30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김다현, 손호영, 박은석, 윤형렬, 김도현, 오소연, 김수용, 황석정 등 쟁쟁한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한다.
리샤르 역의 황석정과 리유 역의 손호영/스포트라이트
리유 역의 손호영과 타루 역의 린지/스포트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