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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어린 총수(김승연 한화 회장) 키운 故 강태영 여사는?

강태영 여사. /한화그룹



11일 별세한 고(故) 아단(雅丹) 강태영 여사는 한화그룹 김종희 창업주의 부인이자 김승연 회장의 어머니로 한화그룹의 기틀을 닦는데 헌신한 조력자였다.

1927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난 강 여사는 양가 어른들의 소개로 광복 이듬해인 1946년 현암 김종희 선생과 결혼했다. 현암은 1952년 한국화약주식회사를 설립한 한화그룹의 창업주다. 강태영 여사는 현암과의 사이에서 김영혜 전 제일화재해상보험 이사회 의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호연 빙그레 회장 등 2남 1녀를 뒀다.

현암은 강태영 여사에게 문화사업이나 육영사업과 같은 사회활동에 대한 조언을 자주 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암이 강 여사와 학교 설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 부지 선정에 대한 고민을 전하자 강 여사가 공장 부지로 사두었던 천안시 신부동 땅을 제안한 것이 대표적 일화다. 강 여사의 제안으로 이 땅에 설립한 것이 현재의 천안북일고다.

현암은 1981년 7월 23일, 59세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강 여사는 남편의 뜻을 살리기 위한 추모사업에 몰두했다. 사별 이후 생일잔치를 벌인 적도 없다. 김승연 회장은 "2003년 어머니가 희수를 맞을 때 잔치를 하기로 가족이 뜻을 모았지만,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진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승연 회장에게 어머니 강태영 여사는 삶의 스승이자 존경의 대상이었다. 현암이 작고한 뒤 한국화약(한화)그룹 경영은 김승연 회장이 승계했다. 당시 29세였던 김 회장은 국내 최연소 10대그룹 총수이자 풋내 나는 젊은이로 평가됐다. 어린 도련님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강태영 여사는 김승연 회장에 대한 강한 신뢰를 내비치며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강 여사의 믿음을 등에 업은 김승연 회장은 모두가 반대하는 무모한 결정을 내린다. 폴리에틸렌(PE)과 석유화학 중간재를 생산하는 한양화학 인수에 나선 것이다. 한양화학은 1969년 글로벌 화학회사인 다우케미칼과 국내 화학비료업체였던 충주비료가 50대 50으로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당시 석유화학산업은 70년대 말의 제 2차 오일쇼크 여파로 경기가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다. 한양화학의 적자 규모가 커져 다우케미칼이 사업을 포기하고 매각을 결정한 것을 김승연 회장이 사들였다. 회장으로 취임한 이듬해인 1982년의 일이다.

모두의 우려와 달리 적자가 쌓였던 한양화학은 1년 만에 75억원 흑자로 돌아서며 기사회생했다. 김승연 회장이 자신의 좌우명인 '필사즉생(必死則生·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라는 의미)'에 따라 경영 일선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후 어린 김 회장의 리더십에 의문를 제기하는 이도 사라졌다.

강 여사가 어린 나이의 김 회장에게 회사를 맡긴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사업능력과 추진력은 아버지보다 뛰어난 것 같다"고 지지해준 덕분이다. 김 회장은 강 여사의 바람대로 제2의 창업을 실현했고 한화는 국내 10대그룹, 포춘지 선정 글로벌 기업 277위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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