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협동조합 이사장 ○○○.'
중기중앙회 비상근 부회장을 맡으며 이처럼 한 장의 명함에 앞뒤로 두 가지 직책을 새기고 다니던 중기협동조합 이사장들은 앞으로 명함을 따로 파서 다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기중앙회 부회장 명함이 자칫 사업을 하거나 조합 지원활동을 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어서다.
오는 9월28일부터 본격 발효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 때문이다. 일각에선 부정청탁금지법을 '김영란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중소기업계와 중소기업협동조합을 대표하는 단체인 중기중앙회에는 회장, 상근 부회장 말고도 40여 명의 비상근 부회장들이 있다.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 2층. 중기중앙회가 주최한 '청탁금지법과 중소기업 대응전략 설명회'에는 기존에 마련된 132석 외에도 인원이 몰려 간의의자까지 동원되는 등 약 150명의 업계 관계자들이 자리해 경청했다. 중소기업과 관련 조합, 단체, 소상공인에 종사하는 이들 관계자도 향후 범사회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이는 부정청탁금지법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는 모습이다.
우선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된 중기중앙회는 부정청탁금지법 적용대상인 공공기관에 해당된다. 회원조합의 투표로 선출하는 회장, 중소기업청장이 임명하는 상근부회장, 감사, 그리고 기타 임원과 직원들이 모두 적용된다. 중기중앙회에 기간제로 일하는 근로자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부정청탁금지법에선 배우자도 적용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중기중앙회의 경우 정부의 출자·출연·보조를 받는 기관 또는 단체, 그 밖에 정부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거나 대행하는 기관·단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법이 적용되는 공직유관단체에는 한국은행, 공기업, 지방공사, 지방자치단체 출연기관 등이 있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법무법인 송현 윤용근 변호사는 "개별 중기협동조합은 주무관청으로부터 경비보조를 받을 수 있는 단체이지만 공직유관단체가 아니므로 부정청탁금지법의 적용대상인 공공기관에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중기중앙회 비상근 임원을 겸하고 있는 협동조합 이사장들은 공직유관단체인 중기중앙회 임원이기 때문에 법 적용 대상이 되며 그 배우자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들 역시 공무원, 교원, 공공기관 임직원, 언론사 임직원 등과 같이 높은 청렴성과 도덕성이 요구돼 관련법 발효 이후엔 부정청탁을 받거나 금품수수를 받을 경우 처벌될 수 밖에 없다.
개별 중기협동조합도 정부의 보조금 지급 여부에 따라 공직유관단체로 분류될 수도 있다. 인사혁신처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한 900여 개의 공직유관단체 포함된 중기협동조합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변호사는 "직책을 겸임하고 있는 단체장은 부회장 또는 이사장 등 어떤 명함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향후 부정청탁금지법의 적용 여부가 다를 수 있어 양자를 구별해서 업무를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복수의 중소기업 단체 관계자는 "이 법은 '무엇을 하지 말라'는 내용은 많은데 '무엇을 해도 된다'는 것은 없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현장에선 무척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면서 "공무원 등 당초 법이 적용되는 직업군 뿐만 아니라 중기협동조합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게 돼 회원사 지원, 조합 활동 등에 상당한 제약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부정청탁금지법의 핵심 내용은 '부정청탁의 금지'와 '금품 등 수수 금지'다.
일반인은 공직자 등에게 부정청탁을 해서도, 공직자 등은 청탁을 들어주거나 돈을 받아서도 안된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인 공직자(배우자 포함) 등은 약 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부정청탁을 하고 금품을 줄 수 있는 일반 국민도 잠재적으로 법 적용 대상이다.
금품이 오고가지 않았더라도 민원인은 부정청탁만 해도 처벌받는다. 자신이 직접적으로 부정청탁을 했다면 부탁한 사람이 아닌 청탁을 받은 사람만 처벌된다. 특히 3자가 부정청탁을 했다면 한 사람도, 이를 받아준 사람도 모두 처벌받는다. 또 청탁과 무관하게 돈을 받은 것만으로도 처벌된다.
권익위 조두현 법무보좌관은 "부정청탁이란 한 마디로 안되는 것을 되게 부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관습을 이젠 바꿔나가야 한다"면서 "외국인이 국내에 와서 법 적용 대상자들에게 부정청탁을 해도 속지주의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되고, 내국인이 외국에 나가서 대사·영사 등 공무원에게 청탁했다고 하더라도 모두 처벌이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부정청탁금지법의 핵심은 부정청탁(또는 금품수수)을 하지 마라, 부정청탁을 전달하지 마라, 부정청탁이 들어오면 거절해라는 것이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권익위는 빠르면 이번주 부정청탁금지법 사례집을 홈페이지에 공개할 계획이다. 중기중앙회도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9월 말이나 10월 초 지침서를 만들어 배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