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은행에 다니는 김희망(48·가명)씨는 두 달 전쯤 은행으로부터 희망퇴직 대상에 올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면담만 다섯 여섯 차례. 회사는 그에게 은근히 자리를 비워줄 것을 제안했다. 회사를 남아 있으려고도 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공무원인 아내도 든든한 백이었다. "가족과 건강이 최고다. 쉬면서 생각하자"는 위로의 말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사표를 내지 않은 김 씨의 동료는 회사로부터 "(희망퇴직을 수용하지 않은 만큼)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김씨는 "어린 후배들은 공무원 등으로 과감히 진로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면서 " '회사벽에 X칠할 때까지 참고 버텨 보자'는 생각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고 털어놨다.
B증권사 입사 6년차 대리인 박호영(34·가명)씨는 최근 실시된 희망퇴직에서 사표를 던졌다.
'로스쿨'에 진학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홀벌이에 결혼 3년차. 가장으로서 고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가 지급하는 퇴직금과 위로금으로 2년 정도는 버틸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요즘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는 김씨와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조기퇴직이 상시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최근과 같이 적잖은 금융계 종사자들이 발걸음도 '가볍게' 사표를 던지는 경우는 없었다.
◆금융권 신의 직장 옛말?
28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금융위원회에서 관리하며 상반기에 보고서를 제출한 13개 업종, 117개 금융사의 고용현황을 조사한 결과 2016년 6월말 기준 직원 수는 19만410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5년 12월말보다 1919명(1%) 감소한 것이다. 남자 직원은 992명(1%), 여자 직원은 927명(1%) 줄었다.
인원이 가장 많이 줄어든 업종은 카드로, 1만2966명에서 1만2106명으로 860명(6.6%) 줄었다.
이어 은행 690명(0.7%), 할부 395명(6.4%), 증권 216명(0.7%), 생명보험 33명(0.2%), 저축은행 16명(2.4%) 순이었다.
반면 리스는 240명(7.7%), 금융지주는 21명(2.7%), 손해보험은 13명(0.1%), 자산운용은 9명(3%)이 각각 늘었다.
카드사 중에는 현대카드가 463명(15.8%)으로 인력이 가장 많이 줄었다. 콜센터 업무 일부가 이관된데다 기간제 근로자 계약만료가 상반기에 집중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어 신한카드 223명(7.1%), 삼성카드 117명(4.9%), 하나카드 46명(5.5%) 순으로 인력 감축이 많았다.
은행권(13곳)은 KB국민은행 407명(2%), 우리은행 167명(1.1%), 부산은행 152명(4.3%), 신한은행 123명(0.8%), 기업은행 100명(0.8%), KEB하나은행 89명(0.6%) 순으로 줄었다. 13개 은행 중 8곳의 고용이 축소됐다.
증권사(28곳) 중에서는 대신증권이 110명(6.5)으로 가장 많이 감소했다. 이어 한국투자증권 72명(3%), 교보증권 51명(5.1%), NH투자증권 41명(1.4%), 신영증권 34명(5.4%), 현대증권 34명(1.5%) 순이었다.
생명보험(8곳)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생명이 59명(4.5%), 삼성생명이 31명(0.6%), 흥국생명이 18명(2.1%) 줄었다.
손해보험(8곳) 중에서는 현대해상 103명(2.6%), 동부화재 62명(1.3%), 메리츠화재 47명(2.2%) 순으로 감소했다.
◆50대는 서럽다...퇴직에도 온도차
금융권의 직원 수 감소는 인사 적체를 해소하고 조직 슬림화를 위해 지속해서 희망퇴직을 실시해 주로 관리자급 이상의 직원을 내보내고 있는 반면 신입사원 채용은 줄어든 영향이 크다.
은행업계의 경우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 등 5개 은행 가운데 올해 들어 대졸 신입사원 일반 채용에 나선 곳은 신한은행 정도다. 우리은행도 서비스 직군을 상반기에 뽑았지만, 일반 대졸자 신입 공채는 아니었다. 반면 이들 은행의 상반기 희망퇴직자 수는 1000명이 넘는다.
애플리케이션 판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판매 등 갈수록 은행원들의 업무 강도가 높아지는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희망퇴직 바람에는 세대 간 온도차가 있다. 목돈의 퇴직금을 챙겨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30대는 희망퇴직에 몰리고 있다. 반면 퇴사 후 재취업이 어려운 40대 후반에서 50대는 경기 침체 속에 몸을 한껏 사리며 '끝까지 버티자'는 이들이 적잖다.
금융권의 상시 구조조정에 평가는 엇갈린다. 노조 측은 "경영난을 근로자에게 떠넘기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적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은행이 중간 간부 수가 많은 항아리형 인적구조를 갖고 있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으로는 희망퇴직 보상금 때문에 비용 부담이 따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은행에 이득"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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