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경제'가 저성장을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용카드가 이미 일상화됐고 핀테크 등으로 모바일 결제까지 대폭 활성화될 경우 지폐, 동전과 같은 전통적인 화폐 사용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결국 현금 없는 경제가 되는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1일 내놓은 '현금 없는 경제: 의미와 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현금을 사용하면서 정부, 소비자, 기업들이 부담하는 비용만 한 해 2000억달러 (2012년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2%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여기에는 ATM 사용료와 기계 관리비용, 소매점 현금 도난, 현금 운반 및 인출에 소요되는 시간 등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현금 사용으로 인한 비효율성만 줄여도 매년 경제가 그 만큼 더 성장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스웨덴, 덴마크 등 핀테크 산업이 앞선 주요 선진국들이 '현금 없는 경제'로의 이행을 서두르고 있는 1차적 이유도 이때문이다.
통화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현금 없는 경제'로의 이행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저물가→디플레이션→소비 위축→현금 보유 욕구 증가→은행 시스템 붕괴→금융 위기→소비 위축 등 악순환 가능성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명목금리를 일시적으로라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명목금리가 '제로(0)' 아래로 내려가면 지폐가 존재하는 사회에선 사람들이 현금을 은행 대신 집안에 있는 금고나 장롱 등에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명목금리를 0 아래로 낮출 수 없다.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 사례에서 보듯 양적 완화의 정책적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한경연 김성훈 부연구위원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관련해 "현금 없는 사회를 가정할 때, 일본처럼 20년 동안 양적 완화에 매달리는 것보다 1년 동안 마이너스 3~4% 수준의 금리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일본 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고, 물가가 하락해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우리나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우리도 본격적인 저성장·저물가 시대에 대비해 효과적인 거시경제정책이 작동할 수 있는 현금 없는 사회로 서둘러 이행해야 한다"면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잘못된 규제들이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기술적인 부분은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세계 정보통신기술 발전지수(IDI) 1위 국가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덴마크와 스웨덴이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게 된 것은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부작용도 없는 것은 아니다.
현금 사용에 익숙한 노인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어 단계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점이 대표적이다.
또 모든 지급과 결제에 기록이 남아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합법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숨기고 싶은 거래들도 있어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 관련 법률 보강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금융실명제 시행 초기처럼 단기적으로 거래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어 다른 선진국들처럼 목표시점을 설정하고 순차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