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온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에서 연실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화의 물꼬는 서울 사는 작은 아버지네가 텄다. 주제는 경주에서 시작된 지진이었다. 불과 몇 초간이었지만 생생하게 느낀 여진에 공포를 느낀 모양이다. 얘기를 듣던 사촌 언니 부부네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에 사는 부부는 고층 아파트가 수 초간 크게 흔들렸지만 휴대전화는 먹통이고 뉴스에서도 지진 발생 얘기만 나올 뿐 어떻게 대처하라는 등의 말이 없어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다들 한마디씩 거드는 와중에 결론은 각자도생으로 끝이 났다.
묵묵히 대화를 듣던 고모는 혀를 끌끌 찼다. 읍내에서 신발 가게를 운영하던 고모네는 최근 가게를 정리했다. 건강 악화도 문제였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월세가 근본 원인이었다. 가게 자리에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곧 들어선다고 했다. 큰 아버지네도 어려움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올 여름 폭염으로 양계장이 직격탄을 맞은 차였다. 폭염 얘기가 누진제로 이어졌다. 어린 아이가 있는 사촌네는 에어컨을 24시간 돌리는 바람에 전기세 폭탄을 맞았다고 했다.
TV에서 연일 북한 핵실험 얘기가 나왔지만 바닥을 친 민생 경제 때문인지 이 주제는 관심 밖이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시급한 가족들에게 북한은 그저 먼 나라 얘기였다. 취업 준비생인 사촌은 이번 추석에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화살은 최근 결혼한 또 다른 사촌네로 향했다. 이들은 딩크(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족이다. 앞으로도 아기는 갖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내 집 마련도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밥상머리 모든 대화의 끝은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라는 데 방점이 찍혔다. 이번 명절에도 하나같이 다들 어렵다는 얘기만 늘어놨다.
추석 명절이 끝나자 여야가 추석 민심을 놓고 엇갈린 해석을 내왔다. 정부 여당은 추석 민심을 두고 "국민의 엄한 목소리이자 숭고한 명령이었다"고 틀에 박힌 논평을 내놨다. 야당은 이번에도 박근혜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을 탓했다. 매년 명절마다 반복된 모습이다. 추석 민심은 정치권을 향해 질타를 보내지만 이들은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지역 민심'이 과목별 성적이라면 '추석 민심'은 종합 성적이다. 물론 정치권 성적은 낙제에 가깝다. 하지만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무엇이 부족한지 일단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해법을 찾는 것이다. 낮은 성적 탓을 외부로 돌리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