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에서 백년손님(사위) 그리고 그룹 오너에서 파산자로….'
19일 법원으로부터 개인파산 결정이 내려진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67·사진)의 인생사다.
서울중앙지법 파산3단독 권창환 판사는 이날 동양사태 피해자 A씨 등이 낸 현 전 회장의 개인파산 신청을 받아들였다.
2013년 당시 불거진 '동양그룹 사태'의 장본인이인 현 전 회장은 거액의 사기성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해 일반 투자자 4만여명에게 피해를 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으로 기소돼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확정받은 바 있다.
현 전 회장은 1949년생이다. 그는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수재들이 거쳤던 정통 코스를 현 전 회장도 고스란히 밟았다.
고려대 총장을 역임한 고 현상윤씨가 할아버지, 이화여대 교수였던 고 현인섭씨가 아버지다. 명문가에서 수재가 나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 전 회장은 보란듯이 대학 3학년때 사법고시를 패스한다. 1970년의 일이다. 한창 출세가도를 달리려는 찰나, 검사 현재현은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을 창업한 고 이양구 회장의 맏딸 이혜경씨와 결혼한다. 유력집안 자제로 검사까지 거쳐 재벌가 맏사위의 길을 본격적으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현 전 회장은 동양시멘트 이사를 맡는 것으로 경영수업에 곧바로 들어간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다.
현 전 회장의 장인인 이양구 회장은 직전에 동양제당공업주식를 설립, 삼척시멘트를 인수하며 시멘트사업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동양제당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도 공동 출자한 회사다. 6·25 전쟁이 끝나고 전후 복구사업이 한창이던 시절 시멘트사업이 매우 유망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인수 직후 연간 생산능력이 8만톤에 그쳤던 삼척시멘트는 동양시멘트로 간판을 바꿔달며 67년에는 연산 100만톤으로, 75년에는 연산 300만톤으로, 85년에는 500만톤으로 급성장한다. 88년 서울올림픽 등으로 건설붐이 최고조로 일던 90년대 초반에는 연산 1100만톤까지 생산능력이 늘어났다.
그 사이 현 전 회장은 동양시멘트 사장(1983년)을 거쳐 동양그룹 회장(1989년)에 각각 올랐다. 회사도 시멘트, 레미콘의 굴뚝 산업에서 동양매직, 동양생명, 동양종합금융증권(현 유안타증권) 등 가전·금융 분야로 확대됐다. 골프장 등 레저부문도 품에 안았다. 제조·금융 두 축이 그룹의 핵심 사업이 된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동양은 연 매출이 9조원이 넘는 그룹 반열로 올라섰다. 현 전 회장이 시멘트부문 사장을 맡은 지 27년 만에 거둔 성과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건설업과 금융업이 치명타를 입고, 순탄한 듯 했던 그의 동양그룹은 부인인 이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까지 겹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야심차게 진출했던 해외 유전개발 사업은 그룹에 유동성 위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결국 현 전 회장은 그룹이 풍전등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발행했던 사기성 CP가 수많은 피해자를 냈고, 이에 대해 법원이 이날 최종적으로 개인파산 선고를 내린 것이다.
명망가 수재에서 재벌집 사위로, 이방인에서 그룹 오너로 승승장구하는 듯 했던 현 전 회장은 이번 법원 결정으로 자신의 개인 재산을 약 3700명의 채권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것과 함께 기업가로서의 단꿈도 여기서 멈출 수 밖에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