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 의석의 힘일까, 힘자랑일까. 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김재수 해임안 가결' 논란으로 26일 첫날부터 파행과 공전을 거듭했다. 당초 법제사법위원회 등 12곳의 국회 상임위원회는 이날부터 20여일간 국감을 벌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야3당의 '김재수 해임건의안' 강행 처리에 반발한 새누리당이 국감 일정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반쪽 진행을 피하지 못했다.
여·야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이 사회권을 쥔 외교통일·교육문화체육관광·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산업통상자원·보건복지·환경노동·국토교통위 등 7곳은 야당 의원만 참석한 채 반쪽으로 진행됐다.
반면 새누리당 의원이 위원장인 법사·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국방·안전행정·정무위는 국감을 위한 전체회의조차 열지 못했다. 일부 상임위는 국감을 내달로 연기하는 등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국감 일정이 내달 15일까지 20여일간 계속되는 가운데 첫날부터 야당 단독 국감 초읽기에 접어든 것이다. 야당이 단독 국감을 진행한 것은 1988년 국감 제도 도입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이날 오전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불러 2~3일 국감 연기를 제안, 관계 회복 등을 시도해 국감 기간 내내 반쪽 진행 가능성은 적지만 야당 단독 청문회에 이어 단독 국감까지 밀어붙이면서 여소야대 위력을 재확인했다는 분석이다. 여당의 보이콧으로 야권의 단독 국감이 계속된다면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이 최근 단독 청문회를 개최한 데 이어 단독 국감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과반 의석수와 무관치 않다. 야3당의 의석수는 전체 165석(더민주121·국민의당38·정의당6)으로 과반을 넘는다. 무소속 6명 의원 중 야권 성향 의원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재적 의원 5분의 3(180석)의 동의를 요구한 국회선진화법이 있지만 인사 안건이나 국감에선 소용이 없다. 청문회 개최와 해임안 가결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국감의 경우 여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임위가 열리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국회법상 상임위원장이 사회를 기피하면 간사가 사회권을 넘겨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과반을 넘는 쪽이 주로 정부여당이어서 보이콧을 하는 쪽은 야권이었지만, 20대 총선에서 전체 야당이 과반을 넘는 지지를 받으면서 공수(攻守)가 뒤바뀌었다.
일단 새누리당은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임건의안을 표결에 부치는 정 의장이 사퇴할 때까지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사퇴 촉구 의미로 새누리당은 이날부터 본회의장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고, 이정현 당 대표는 단식농성에 나선 상황이다.
특히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형사 고발을 검토하는 한편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정 의장이 세월호와 어버이연합 등을 언급하며 "맨입으로는 안 된다"는 녹취록까지 공개하는 등 공세를 퍼붓고 있어 국감 파행이 장기화할 조짐도 엿보인다.
한편 이날 국감 시작 전 참석자들은 지난해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 물대포를 맞아 중태에 빠졌다가 지난 25일 숨진 농민 백남기씨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