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대표 /연합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2차 공격'에 나서 이재용 부회장이 어떤 카드(지배구조 개편)를 꺼낼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지난 5일(현지시각)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할 것을 요구하며 삼성을 향해 칼 끝을 겨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그룹 경영을 맡은 지 2년여 동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상장, 방산·화학 부문 매각,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같은 작업을 추진했다.
큰 틀에서 엘리엇의 주장이 삼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오히려 삼성이 스스로 내세우기 힘들었던 삼성전자의 인적분할과 지주전환 명분을 세워줬다는 평가도 있다.
이 부회장은 오는 27일 등기이사로서 경영 전면에 나선다.
삼성 홀드코와 삼성물산이 합병하여 확장된 규모의 삼성지주회사를 형성 구도자료=블레이크 캐피탈 엘엘씨(Blake Capital LLC), 포터 캐피탈 엘엘씨(Potter Capital LLC)
◆엘리엇 노림수는 결국 돈(Money)?
지난해 삼성물산에 이어 삼성전자를 공격하는 엘리엇의 의도는 결국 돈으로 해석된다. 지난 5일 엘리엇의 자회사 블레이크 캐피털과 포터 캐피털은 삼성전자 이사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해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고, 각각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 30조원 규모의 현금배당과 3명의 독립된 사외이사 자리를 만들라고 요구했다.
엘리엇은 현재 삼성전자가 주식시장에서 저평가 받고 있다면서 분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삼성전자를 2개로 분리한 뒤에는 지주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할 수 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눈에 띄는 데목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3명의 독립적 이사를 이사회에 추가하라고도 요청한 것.
블레이크와 포터는 "삼성전자 지주회사(삼성 홀드코(Samsung Holdco))와 사업회사(삼성 옵코(Samsung Opco))의 이사회는 주주 구성원을 보다 적절하게 대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특히 적절한 국제적인 경영 이력을 보유한, 또 변화의 일환으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 3인의 독립적인 이사를 각 회사의 이사로 추가 선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키고 추가된 3명의 사외이사를 차지할 경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어 보인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 연구원은 "지배구조개편에서 삼성이 거칠 것으로 예상되는 대부분의 과정이 엘리엇의 제안에 포함됐다"면서 "삼성이 스스로 내세우기 힘들었던 삼성전자의 인적분할과 지주전환 명분을 엘리엇이 세워준 격이다"고 말했다.
윤태호 연구원은 "삼성이 아닌 엘리엇이 화두를던졌지만 ▲삼성전자 저평가 해소 ▲순환출자·금산분리 이슈를 통한 지배구조의 투명성 ▲오너일가의 지배력 확대라는 명분이 충분하다"면서 "양쪽의 갈등 요인이 되기 보다는 지배구조개편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재용이 그리는 삼성 지배구조 나올까
삼성은 엘리엇의 요구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겠다"란 입장을 내놓았다. 시기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이사로서 경영 전면에 나설(27일 주총) 예정이어서 설득력 있는 카드를 제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IBK투자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최근 삼성그룹 계열사 간 사업 및 지분 정리 상황을 감안하면, 이부회장의 등기이사 등극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당연한 로드맵으로 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유진투자증권 이정 연구원도 "향후 시장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전략과 삼성그룹 전반의 지배구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성은 계열사 간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로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삼성이 지주회사 구조로 갈 것이란데 큰 이견은 없다. 문제는 시점과 어떻게 이뤄질지 여부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작업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 설립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비금융계열사들의 일반지주회사 설립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허용 시 상기 2개의 지주회사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최종지주회사 설립의 3단계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지주회사 구축 방법은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첫번째는 삼성물산을 분할해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한 투자 부문을 금융지주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계열사는 물산금융지주와 물산사업회사의 지분을 각각 40.26% 보유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삼성생명을 생명지주회사와 생명사업자회사로 분리하는 것이다. 금융지주사가 되면 금융 부문 출자구조는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금융지주회사→타 금융 계열사'로 바뀐다.
문제는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43%이다. 금융지주사 전환하려면 지주회사가 비금융 계열사의 최대 주주여서는 안 된다. 삼성생명이 2대 주주가 되려면 7년(금융지주회사법) 내에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야 한다. 삼성전자의 2대 주주는 삼성물산(4.18%)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 지분 1.63%를 삼성물산에 넘기면 두 회사는 각각 지분 5.8%와 5.81%를 보유하게 돼 최대 주주 지위가 바뀐다. 수 조원 대의 자금이 문제다.
당장 지배구조 개편 보다는 주주친화정책과 경영 효율화에 힘쓸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하이투자증권 이상헌 연구원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변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이 부회장 등이 향후 삼성그룹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자질을 입증하는 것으로 경영능력에 대한 신뢰성을 증가시켜야 한다"면서 "경영능력에 대한 신뢰성은 실적 신성장동력 사업, 사업부문 재편 등을 통해 결정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최근 행보도 그룹의 기초체력을 다지는데 집중하고 있다. 비주력 사업군인 프린터사업부의 HP 매각이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