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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시황

잊을 만 하는 다시 공격하는 투기펀드, 대책 없나

#. 2003년 4월 영국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 SK㈜ 지분 14.99%를 매입해 2대 주주에 오른다. 당시 소버린 측은 SK그룹에 대한 경영 참여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 소버린자산운용은 이후 2년 3개월 동안 경영투명성 제고 등을 내세워 SK그룹을 상대로 최태원 회장 퇴진 등 경영진 교체 및 기업지배구조 개선, 계열사 청산 등을 요구했다. 1조원 가까이 투입해 방어전에 나선 SK를 소버린이 차지하진 못했다. 하지만 소버린은 지분 14.99%를 주당 5만2700원에 팔아 7559억원을 챙겼다. 배당금과 환율 변동 등에 따른 차익까지 감안하면 1조원 안팎이다.

#. KT&G 역시 외국계 펀드의 먹잇감이 됐었다. '기업 사냥꾼'으로 잘 알려진 칼 아이칸은 스틸파트너스와 손잡고 2006년 KT&G 주식 6.59%를 사들였다. 이후 이사회에서 자회사 매각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경영 개입을 시도하다 주식을 매각해 1500억원을 벌었다.

1997년 11월 21일 오후 10시.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 후로 20여년이 흘렀다.

외환위기는 국내 자본시장을 완전히 뒤바꿨다. 민족자본은 사라지고 외국자본 유치가 지상과제이자 최고의 덕목으로 자리잡았다.

덕분에 만신창이가 된 채로 막대한 공적자금의 수혈을 받은 제일은행(뉴브리지캐피탈), 외환은행(론스타) 등 은행들은 외국자본에 팔려 나갔다. 삼성자동차(르노), 대우자동차(GM), 대우상용차(타타그룹), 만도기계(JP모건) 등도 외국계에 넘어갔다.

적잖은 투기자본들은 수 년 만에 몇 배의 투자수익을 올리고 세금 한푼 내지 않고 한국 시장을 유유히 떠났다.

오랜 학습효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이 외국 자본의 먹잇감이 된 것은 투기자본에 맞설 수 있는 제도적인 경영권 방어 장치가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성장 동인자료=JP모간(2015년)



행동주의 투자 전략별 증가율 자료=JP모간(2009~2014 연평균증가율)



행동주의 투자자의 목표 기업의 주요 특징 및 검토사항자료=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한국 자본시장은 투기자본의 'ATM'(?)

'지배 구조 바꿔라, 30조 배당해라'. 5일(현지시각) 국내 산업계와 자본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계열사가 삼성전자에 '주주가치 증대 제안서'라는 서신을 통해 이같이 요구하면서다. 또다시 타깃을 삼성그룹으로 삼았다는데 충격파는 더 컸다.

한국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한 경보등이 켜졌다.

국내에서 투기자본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탐욕의 약탈자'라는 별칭답게 몇몇 투기자본은 경영권을 위협할 정도로 지분을 끌어모은 뒤 분쟁을 일으키고, 기회가 되면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 미련 없이 떠난다. 타이거펀드, 소버린자산운용, 헤르메스, 아이칸, 론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99년 미국계인 타이거펀드는 SK텔레콤의 지분 6.6%를 취득한 후 경영진 교체 등을 요구하다 SK 계열사에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해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발을 뺐다.

뉴브리지캐피탈은 1999년 말 제일은행 지분 48.56%를 5000억원에 산 뒤 지난 2005년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에 매각해 1조1800억원의 차익을 거뒀으나 조세회피지역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을 통해 거래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

론스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삼척동자도 다 알 정도다.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뒤 큰 차익을 남기면서 되팔아 '먹튀' 논란을 일으킨 론스타 욕심은 현재도 끝나지 않았다. 하나금융지주는 최근 "론스타가 자회사가 판 외환은행 주식을 매수한 하나금융지주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중재신청을 냈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지주는 2012년 2월 이 회사로부터 외환은행 발행주식 51.02%(약 3억2904만주)를 인수했는데, 이 돈이 적어 손해를 봤다는 게 론스타가 배상을 요구한 배경이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매각 절차 지연으로 손해를 봤다며 5조여원을 요구하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소송은 지난 6월 심리가 끝나고,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먹튀 과정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헐값 인수→다이어트(구조조정)→실적 호전→고가 매각' 이라는 수법이 그중 하나다. 극동건설, 만도 등이 대표적이다. 또 '주식 다량 매집→경영권 간섭·적대적 M&A 위협→경영권 분쟁→주가 상→막대한 차익실현 후 철수'라는 절차도 곧 잘 쓴다.

◆투기자본 막으려면, 차등의결권·포이즌필 등 도입해야

"어느 가게에서 50달러짜리 예쁜 인형을 팔고 있다. 그런데 인형을 사면 100달러짜리 금반지를 선물로 준다. 인형만 사면 무조건 50달러를 번다. 이런 이상한 일이 실제 증시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미스터리를 '모(母)회사의 퍼즐(parent company puzzle)'이라고 부르자."(미국 캘리포니아대 브래드퍼드 코넬(금융학) 교수 2000년 '모회사의 퍼즐'논문)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투기 펀드의 표적이 되는 이유로 '모회사의 퍼즐'에서 원인을 찾는 이가 있다. 먹을 게 있다는 얘기다.

또다른 이유로는 제도적으로 경영권 방어 장치가 취약하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소유 분산을 권장하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단계적으로 강화해 왔지만,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 선진국이 보유한 경영권 방어 장치들이 취약한 실정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구글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밋 CEO 등이 시장에 공개하지 않은 클래스B 주식의 92.5%(2014년 말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구글 의결권의 60.1%를 행사한다.

김예구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저금리, 저성장이 지속되고 기업들이 현금유보를 늘리는 상황에서 투자수익을 높이는 데 한계를 느낀 투자자들은 행동주의 투자 전략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이에 대응해 지배구조, 사업 전략의 취약성을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투기자본에 칼을 쥐여주는 법안을 만지작하고 있다.

야당은 최근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기업들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과거 'SK 소버린 사태'와 같은 악몽이 반복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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