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으로 이야기로 풀어 쓴 건축 디자인 책이 나왔다.
'DGB DESIGN & STORY BOOK-공간의 울림'(윤성철 저)이 그 책이다.
건축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다
우리는 누구나 공간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싫든 좋든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에서 24시간을 보낸다. 자연 속이 아니라면 인위적으로 구축된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당신이 서 있는 인위적 공간은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건축이 삶이고 삶이 건축과 하나가 된 세상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건축물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없는가. 그럴 때마다 건축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가.
저자는 20년 넘게 건축물에 대한 기록을 남겨 왔다. 하나의 건축물이 설계를 거쳐 완공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사진, 도면, 서술을 통해 책으로 엮어 왔다. 건설기록지 또는 건설백서라고 불리는 건축전문서적이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이 보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설계와 시공이라는 전문적인 건설 기술 자료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책은 건축 전문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건축 디자인 도서를 만들어보자는 데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건축가와의 3년에 걸친 인터뷰와 만남을 통해 건물이 들어선 대지를 밟는 것으로 건축 여행을 시작한다.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여 대지를 관통하는 역사성에 현재의 당위성을 묻고 미래의 모습을 떠올린다. 건축가는 아파트로 둘러싸인 이 대지 위에 어떤 형태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상생할 수 있을 것인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미래 은행건축물의 새로운 정형성을 창조하겠다는 건축가의 의지와 주변과의 소통을 통해 조화를 이루려는 두 가지 목표 아래 설계는 시작됐다.
외관은 무엇 하나 더하거나 뺄 것 없이 단아하다. 단순한 박스 형태의 건물이 사각형 대지의 가장자리 네 곳에 안정감 있게 앉아 있다. 그 위에 불투명 정방형 건물이 사뿐히 올라 서 있다. 색상조차 한지와 같이 은은해 눈에 띄지 않는다. 화려하지도 않고 높이조차 10층밖에 되지 않는 이 건물이 시선을 잡아끄는 이유는 뭘까.
건축가는 대지 위에 건물을 앉히기 전에 네 방향에서 출입할 수 있는 길을 먼저 구상했다. 일명 '소통의 길'. 길이 교차하고 만나는 중심에는 전통 가옥의 마당처럼 오감을 체험할 수 있는 라운지를 두었다. 저층부 네 채의 독립적인 건물은 반사연못과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건물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수면 위 브리지를 건너거나 오솔길 같은 공원의 산책로를 지나야 한다.
모던한 스타일의 건축물이지만 기단, 길, 마당 등 전통 건축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친근하게 풀어놓았다. 조금만 세심히 건물을 돌아보면 소통과 친환경이라는 건축가의 디자인 콘셉트가 방문객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아무렇지 않게 한 발, 내딛는 출입구 바닥에도 디자이너의 감성과 디자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작가는 내외부의 길을 따라 움직이며 건물 곳곳에 재미있게 풀어놓은 건축가의 디자인 의도를 하나하나 차분하게 따라가며 설명하고 있다. 전문적인 디자인 얘기뿐만 아니라 공간과 재료 등에 얽힌 에피소드는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충분하다. 작가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건축주인 대구은행 신축추진단과의 3년이 넘는 교감을 통해 대구 시민들에게 바쳐질 그들의 세세한 마음까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지역민들의 안전과 환경을 위해 전면 출입구의 위치마저 바꾸는 불편을 감수했다. 재료 하나를 선정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의 답사도 서슴지 않았다. 지역민들이 언제라도 편안하게 쉬고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서라면 건물의 주인인 은행원들의 공간을 기꺼이 할애했다. 기존 은행 건축물의 정형성을 따르지 않는 파격적인 형태, 내외부가 끊임없이 교류하고 관입하는 저층부의 투명성, 계절이나 빛의 걸음걸이 따라 빛의 양을 조절하는 유리(오카테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다.
책은 다섯 개의 부로 구성돼 있다. 굳이 책 내용 전체를 읽지 않더라고 각 부 끝에 구성한 포토에세이의 서정적인 짧은 글과 인상적인 사진만으로도 DGB컬처플랫폼에 대한 얼개를 알 수 있다.
설계와 시공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 전문 독자들을 위한 배려도 빼놓지 않았다. DGB컬처플랫폼에 적용된 핵심 어젠다 4가지(재료, 대강당, 친환경, 공간구성) 항목을 선정해 디테일 도면과 사진,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또한 직접 건물을 방문해 책에 서술된 내용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책 말미에 건축투어와 친환경투어 가이드 안내서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