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느리게 가는 자전거입니다. 쉽지만 균형잡기가 힘들죠. 입맛에 맞는 먹거리만을 찾다가는 쓰러집니다." (2015년 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
느리게 달리던 자전거(한국경제)가 '성장절벽'에 막혀 거꾸로 가고 있다. 3~4%대를 달리던 경제성장률은 2%대로 뚝 떨어졌다. 저(低)금리·저(低)물가·원저(低)의 단맛은 사라지고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도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 경제가 정말 디플레이션(deflation)의 늪에 빠질 것인가.
시장의 관심은 13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입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한은은 수정경제 전망을 발표한다. 이 총재는 최근 "4분기 하방 리스크가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지난 7월 전망(2.7%)에 부합하는 경로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파업에 따른 차 수출 감소와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단종이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이 총재가 말을 바꿀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경제
느리게 나마 앞으로 가던 자전거(한국경제)가 거꾸로 가고 있다.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도 흔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교역조건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9월 수출은 5.9% 감소해 8월(2.6%) 증가가 '반짝' 반등임을 확인시켰다. 일평균 수출액 감소 폭도 8월(-5.3%)보다 더 커진 -5.9%였다.
9월 실업률은 3.6%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9월 실업률로는 지난 2005년 9월(3.6%)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다. 구조조정과 수출 부진에 고용 한파가 닥친 것.
고용시장의 악화는 직·간접적으로 가계소득의 정체와도 맞물려 움직인다. 실제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명목 기준)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8% 증가한 데 그쳤다.
소비활력도 뚝 떨어졌다. 개별소비세 인하 등 정책효과가 사리지면서 상반기 9%에 달했던 소매판매 중 내구재소비 증가율은 7~8월 3.1%까지 감소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제조업 엔진도 점차 식어가고 있다. 올 2·4분기 제조업 가동률은 72.2%까지 떨어져 IMF 위기가 계속되던 1999년 1분기(71.4%)와 거의 비슷한 수준에 근접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운 가운데 물가마저 낮은 수준을 면치 못하면, 즉 체감경기가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 1.2%로, 5개월 만에 0%대에서 벗어났다. 폭염으로 출하량이 줄어든 농·축·수산물 가격이 10.2% 급등한 영향이 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공급 측 요인을 제외할 경우 물가 상승세는 여전히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6월 말 '하반기(7∼12월)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1%에서 2.8%로 낮췄다. 미국과 독일의 1인당 국민총소득이 한국의 현재 수준과 비슷했을 때의 경상성장률은 5∼6%대였다.
앞날이 더 걱정이다.
미국과 중국 경제 등 글로벌 경제 상황이 나쁘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수출과 내수가 좋을 리 없다. 가계와 기업 역시 소비와 투자에 인색하다.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응답자 94.4%. '일정 부분(73.6%)' 또는 '상당히(20.8%)')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16년 투자환경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의 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기업 10곳 중 9곳이 불황을 걱정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이런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은 최근 우리 경제의 양상이 일본이 걸어온 길과 닮아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 일본 경제를 보듯 경기, 물가의 동반 하강은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날 수 없는 늪과 같다고 경고한다.
◆이주열 '2.7% 달성 무난' vs 연구기관 '성장 활력 높일 요인 없어'
'3.2%(2015년 10월)→3.0%(2016년 1월)→2.8%(4월)→2.7%(7월) →?(10월 13일 한국은행)'.
한은은 올해 2.7% 성장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8일(현지 시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방문 중인 미국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3분기 내수가 상대적으로 선방한 덕분에 전망치 달성이 무난할 것"이라며 수정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4분기 추가경정예산 집행 집중과 코리아세일페스타 등으로 어느 정도 완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IMF도 지난 4일(현지시각)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로 2.7%, 내년 전망치로 3.0%를 각각 제시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버팀목들이 잇따라 휘청이면서 한은이 성장률 전망을 낮출 가능성도 있다.
현대자동차 파업에 갤럭시노트 7의 생산중단·환불 사태, 선박 인도 물량 감소, 석유제품·석유화학 시설 정기 보수, 조업일수 감소 등이 겹치면서 9월 수출( 409억 달러, 전년 동월 비 5.9%↓)은 급감했다. 이러한 요인이 수출 차질에 영향을 미친 금액은 총 30억5000만 달러(감소율 7.0%포인트)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조'에 불과하다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경제동향 10월호'에서 "최근 내수의 완만한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으나, 수출과 제조업의 부진으로 경기 회복세는 여전히 미약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LG경제연구원도 부정적이다. 연구원은 최근 '2017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내년에도 우리 경제의 성장 활력을 더 높일 만한 요인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7월에 제시한 것보다 0.1%포인트 낮은 2.2%로 전망했다. 올해 전망치는 2.5%이다. 내년 성장률이 낮아지리라고 보는 이유로 공급과잉 우려로 건설투자가 빠르게 줄고, 가계 소비 여력 저하로 소비도 부진해 내수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LG경제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위축에 대비해 "경기하향 흐름이 가팔라질 경우 추가적인 금리 인하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재정정책은 단기적인 경제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당분간 확장적으로 펴고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신산업 육성, 규제 개선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