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환경과 제도 변화 속에 국내 보험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11일 보험연구원은 지난해 5.5%에 달하던 성장률이 올해 3.2%로 2%포인트 이상 낮아지고 내년에는 2.2%로 '반토막'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생명보험의 경우 내년 1%대로 성장률이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와 신회계기준 도입에 따른 자본확충 부담으로 주력상품인 저축성보험과 연금보험을 판매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이날 보험연구원의 성장률 발표 직후 생보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간 연금과 저축성보험을 많이 팔아 수입보험료가 늘었는데 회계기준 변경에 대비해 자본을 쌓으려면 금리 역마진 리스크가 큰 연금과 저축성보험 등을 무턱대고 판매할 순 없다"며 "매출을 늘리기 위한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손보업계 역시 2%대로 떨어진 내년 성장률에 근심이 가득하다.
갈수록 낮아지는 성장률을 극복하고자 보험사들은 최근 '마른 수건 쥐어짜기' 전략에 돌입했다. 가뜩이나 변변찮은 살림의 국민들의 안주머니에서 쌈짓돈을 챙기겠단 계획이다. 이달 생보사들은 속속들이 암보험·건강보험 등 보장성보험의 예정이율을 낮춰 보험료를 인상했다. 손보사들도 내달 보장성보험료 인상을 위해 예정이율을 낮출 계획이다. 문제는 올 상반기에도 한 차례씩 보험료 인상을 단행했다는 데 있다. 한 해 두 번씩이나 보험료를 올린 것은 이례적이다.
보험사들의 불완전 판매 행각엔 헛웃음이 난다. 보험연구원의 성장률 발표가 있던 날 금융감독원은 그간 보험사들이 소비자들에 종신보험을 연금보험으로 가입시켜 피해를 불러 왔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사망보험금을 해지하고 연금으로 바꿀 수 있는 특약을 넣어 종신보험을 판매하고 있지만 이는 연금보험보다 받을 수 있는 돈이 적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지난달 경남 지역 지진 피해 당시에는 일부 손보사가 지진보험 특약 가입을 일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위험을 대비해 차곡차곡 국민들을 대신해 돈을 모아 수익을 높여 피해 발생 시 보장을 업으로 삼는 보험사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국민들의 분노와 함께 보험업에 대한 신뢰를 잃은 후에야 각 사는 부랴부랴 지진 특약을 부활시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행동으로, 당분간 국민들의 보험업에 대한 신뢰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은 소비자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보험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론 산업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보험연구원도 이날 저성장 극복 방안으로 보험 계약자의 불만을 줄이는 각종 대책을 선보였다. 보험 가입자에 건강생활서비스까지 제공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과 같은 선진 보험시장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이다. 보험산업의 성장률 제고를 위해선 소비자와의 신뢰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 기업과 국민 사이 신뢰 관계 구축이야말로 그 어떤 환경적·제도적 변화에도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