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은행 가계부채 비중 추이*12개 시중은행 합산 기준, 개인사업자대출의 변동금리 및 혼합형 대출 비중은 원화대출금 중 종소기업대출의 변동금리·혼합형 대출 비중을 대치용으로 사용.(국민, 우리, 신한, 하나, 한국SC, 한국씨티, 부산, 대구, 경남, 광주, 전북, 제주)*n.a는 업무보고서를 통해 파악할 수 없는 자료..자료=12개 시중은행 업무보고서, 한국기업평가.
"8·25 대책은 상반기 가계부채 증가율이 빨랐던 점을 고려한 가계부채 관리대책이지 부동산대책이 아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8·25 대책 이후 강남 3구 재건축 시장이 더욱 들썩이고 있다는 지적에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개인의 모든 부채를 파악해서 상환능력을 따지는 총부채 상환부담 평가시스템(DSR)을 연내 구축하고 신용대출 증가세를 고려해 추가 대책도 강구하겠다"고도 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가계 대출 관리에 나섰지만,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인 가계부채는 양과 질 측면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늘어난 가계대출이 실수요자가 집을 사기 위해 받은 건전한 대출이라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생활자금으로 많이 쓰인 만큼 경기가 나빠지면 부실화할 위험이 높다는 것.
지난 2014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등장한 이후 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가계부채 증가를 용인하는 정책을 쓴 탓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와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규제 완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은행별 가계부채 비중현황*일반은행 12개사 업무보고서를 기초로 한국기업평가 정리
◆부실위험 큰 생계·사업·차환자금이 37.5%
국내 경제에서 가계부채는 양과 질 모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말 현재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1191조3000억원이었다. 여기에 65조9000억원의 판매신용을 더한 가계신용은 1257조3000억원으로 또 다시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부채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도 곳곳에서 나온다.
생계형 대출이 늘면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저신용자 대출은 전체 가계대출의 31.6%(1분기 기준)로 늘었다. 1년 전보다 1.7%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다중채무자도 26.9%에 이른다. 규모는 128조9000억원이다.
일반은행 12개사(국민, 우리, 신한, 하나, 한국SC, 한국씨티, 부산, 대구, 경남, 광주, 전북 제주) 업무보고서를 보면 금리상승 위험에 취약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가계대출의 변동금리대출 비중은 2013년 12월 말 77.9%에서 올해 6월 말 70.2%까지 감소했다. 반면 혼합형 대출 비중은 같은 기간 14.4%에서 21.5%까지 확대됐다. 혼합형 대출은 일정 기간(3년 또는 5년) 이후 고정금리에서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형태다.
평일반은행 가계부채 만기구조 비중2016년 6월말 현재 은행계정 원화대출금 기준자료=일반은행 12개사 업무보고서를 기초로 한국기업평가 정리
가계대출의 상환방식도 6월 말 현재 일시상환방식이 45.1%, 분할상환방식이 54.9%(거치식 33.6%, 비거치식 21.4%)를 보였다. 대출유형별로는 가계대출의 73%를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분할상환방식 위주로, 각각 6% 및 18%를 차지하는 부동산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은 일시상환방식이 많다. 일시상환방식 대출은 상환부담이 만기에 집중된다.
특히 일반은행의 일시상환방식 가계대출 중 1년 이하 만기 비중은 66.1%(주택담보대출 44.2%, 부동산담보대출 74.8%, 신용대출 92.6%)에 달했다. 향후 경기침체가 지속된다면 부실위험이 커질 수 있다.
가계대출의 용도로는 상대적으로 부실위험이 높은 생계·사업·차환자금이 37.5%나 됐다. 중도금·이주비 대출은 12.4%였다.
생계·사업·차환자금 대출 비중은 한국SC, 전북, 한국씨티, 국민, 하나은행이 평균 이상이었다. 중도금·이주비 대출 비중은 광주, 경남, 부산, 우리, 대구, 전북은행이 일반은행의 평균을 웃돈다.
빚을 진 가계의 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빚에 몰린 한계가구는 134만 가구(전체 가구의 12.5%)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도 4만 가구 늘었다. 이들이 가진 금융부채는 전체 금융부채의 29.1%나 된다. 통상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이 40%를 넘으면 빚을 갚을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한계 가구'로 분류된다.
또 베이비붐 세대인 50대 이상의 빚(개인사업자 대출)이 6월 말 기준 39.2%에 달한다.
정부는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며, 단기간 내 부실화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지만 이처럼 저소득층, 고령화 등 취약계층의 부채 위기는 이미 임계 수준을 넘었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2016 ARTICLE 4)를 통해 한국의 DTI 한도 규제 60%가 주변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면서 이 비율을 점진적으로 30∼50%까지 끌어내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집단대출에도 DTI를 적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일반은행 가계대출의 자금용도별 비중 *은행계정 원화대출금 중 가계자금대출 기준*일반은행 12개사 업무보고서를 기초로 한국기업평가 정리
◆미국도 일본도 가계부채에서 위기 시작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경험적으로 잘 안다. 눈덩이 처럼 불어난 부채가 순간의 정책 실패나 외부 충격과 결합할 때 충격은 핵폭탄급으로 돌변한다. 세계 경제사를 봐도 심각한 경기침체는 가계 빚에 있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전주곡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는 가계부채가 주택시장의 버블 붕괴와 만나 터진 대표적인 사례였다. 1990년대 시작된 일본의 장기불황 역시 경기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관련 대출 확대로 이어졌다. 이는 결국 자산거품이 꺼진 원인이 됐다.
이 처럼 가계부채의 악몽을 경험한 선진국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마다 과도한 가계빚을 줄이는 작업에 들어갔다. 빚을 줄이는 게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경제의 체질 바꿔야 미래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미국 78.4%, 일본 66.1%이다.
우리는 88.8%나 된다. 전년(84.3%)대비 4.5%포인트 늘었다. 이는 주요 42개국 중 3번째로 큰 증가폭이다. 세계적으로도 부동산 버블이 심각한 영국(87.4%)도 추월했다. 이 비율은 1962년만 해도 1.9%에 불과했지만, 2000년 50%대, 2002년 60%대로 진입하며 가파른 속도로 치솟아 홍콩을 앞지른 뒤 14년째 신흥국 1위를 지키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런 생계형 대출이 부실화하면 가계부채가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미국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 연준(연방준비제도) 등 많은 보고서에서 주택가격과 가계부채가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됐다"며 "우리나라 금융 상황을 분석할 때 큰 문제가 없다는 관점보다 어딘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 아래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