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뉴 삼성'이 닻을 올리고 항해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27일 서울 서초사옥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이재용 부회장을 등기이사로 선임했다. 그룹의 실질적 오너로서 책임경영을 그룹 안팎에 알리는 것이자 경영권 승계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섰음을 선언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 예상하는 이 부회장의 행보는 두 가지다. 주주 친화정책과 경영효율화(지배구조·사업구조)다. 엘리엇의 창업자인 폴 싱어가 요구한 30조원 특별배당, 사외이사 3명 선임 등은 모두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지배구조와 주주 친화정책을 써 무너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것이란 관측이다. 또 비주력 계열사 정리와 인수·합병(M&A)을 통해 뉴 이재용 시대를 열어 갈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그룹 지배구조도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신한금융투자*검은 점선은 순환출자
◆JY의 삼성, 주주친화책 첫 단추
27일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0.38%(6000원) 오른 157만3000원에 마감했다.
갤럭시노트7 사태 해결 등 이재용의 '뉴삼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잘 보여 준다. "이 부회장의 책임경영이 늘 아쉽다"는 시장의 우려를 단번에 날려버렸다는 게 시장 평가다.
신한금융투자는 갤럭시노트7을 관리하는 IT모바일(IM)사업부 뺀 삼성전자 가치를 171만원으로 추정했다.
IBK투자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최근 삼성그룹 계열사 간 사업 및 지분 정리 상황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등극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당연한 로드맵으로 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면서 "주주가치 증대를 위해서 긍정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주주환원 정책 기대감도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명진 삼성전자 IR 전무는 이날 3분기 실적발표 후 개최한 콘퍼런스콜에서 "현재 회사는 2015년 주주환원 잔여재원 활용 방안을 포함해 전반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검토 중"이라며 "현재로써는 잔여재원은 자사주 매입 소각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를 포함한 전반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11월 말까지 공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했다. 작년부터 3년간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의 30∼50%를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에 활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상 최대 규모인 11조30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해 전량 소각했고 연말 배당으로 잉여현금흐름의 30%에 못 미치는 주당 2만원씩을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중간배당 1000원, 기말 배당 2만원 등 모두 2만1000원을 배당했다. 작년 순이익 20조3000억원을 기준으로 볼때 배당성향(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배당금액)은 16.4% 수준이었다.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도 커졌다.
삼성은 계열사 간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로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삼성이 지주회사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데 큰 이견은 없다. 다만 시점과 어떻게 이뤄질지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작업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 설립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비금융계열사들의 일반지주회사 설립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허용 시 상기 2개의 지주회사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최종지주회사 설립의 3단계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지주사가 되면 금융 부문 출자구조는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금융지주회사→타 금융 계열사'로 바뀐다. 문제는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43%이다. 금융지주사 전환하려면 지주회사가 비금융 계열사의 최대주주여서는 안 된다. 삼성생명이 2대 주주가 되려면 7년(금융지주회사법) 내에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야 한다. 삼성전자의 2대 주주는 삼성물산(4.18%)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 지분 1.63%를 삼성물산에 넘기면 두 회사는 각각 지분 5.8%와 5.81%를 보유하게 돼 최대 주주 지위가 바뀐다. 수 조원 대의 자금이 문제다.
삼성은 엘리엇의 제안(삼성전자 분할)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한 뒤 지주사 설립 등을 통해 오너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계획은 삼성 내부에서 오랜 기간 검토하고 있던 사안이다.
◆JY, '경영능력 보여주는게 관건'
투자자와 시장의 관심은 이 부회장의 첫 행보다. 증권가에서는 이 부회장이 주주친화정책을 강화한 후 경영 효율화에 힘쓸 것으로 본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3년부터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양대 축으로 하는 전자계열사와 금융계열사의 수직계열화를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양 계열사 간에 얽힌 지분을 정리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2014년 11월 한화에 방위산업·화학 부문을 매각하는 '빅딜'을 시작으로 2015년 10월에는 화학 부문을 추가로 롯데에 팔았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주축으로 한 전자 및 금융 부문외 사업 부문의 구조조정도 진행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이미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물산 건설부문 등 여러 계열사가 입소문에 오르내린다.
하이투자증권 이상헌 연구원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변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이 부회장 등이 향후 삼성그룹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자질을 입증하는 것으로 경영능력에 대한 신뢰성을 증가시켜야 한다"면서 "경영능력에 대한 신뢰성은 실적 신성장동력 사업, 사업부문 재편 등을 통해 결정 될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최근 행보도 그룹의 기초체력을 다지는데 집중하고 있다.
비주력 사업군인 프린터사업부 매각이 좋은 예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프린팅솔루션 사업부을 분할해 미국 HP(휴렛팩커드)에 매각하기로 의결했다. 유진투자증권 이정 연구원은 "이번 매각은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하는 비주력 사업부에 대한 적극적인 사업재편"이라며 "이는 중장기적 역량 강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직접 챙기는 자동차 관련 사업과 바이오 등은 그룹에서 무게 중심이 커질 전망이다. 당장 삼성전자의 인수설이 돌았던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네티 마렐리(Magneti Marelli) 건 처리 문제에도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