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많은 사람이 지주회사로 알고 있지만 김승연 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은 아직 지주회사가 아니다. 그래서 미완의 지주회사 전환과 3세 경영 승계는 점차 풀어야 할 숙제다. 김 회장의 세 아들은 이미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은 각각 한화큐셀, 한화생명, 한화건설에서 일하고 있다.
◆ 지주 아닌 지주 '한화'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에 경영권 승계의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는 한화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태양광 사업을 끌어나가고 있다. 일찍부터 한화그룹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던 김 전무는 2010년 독일에서 인수한 태양광 설비업체 한화큐셀에 차장으로 입사해 2014년 상무로 승진했다. 적자였던 태양광 사업이 지난해 6년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한화큐셀 매출은 2조901억원, 영업이익 890억원, 순이익 512억원이었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종합화학은 다음달 16일 이뤄지는 한화큐셀코리아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지분 50.15%)로 올라설 예정이다. 이와는 별도로 한화종합화학은 현재 한화의 화학 계열사 중 가장 알짜로 불리는 한화토탈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종합화학이 그룹 핵심 계열사 2곳을 지배하는 셈이다.
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세 아들, 특히 장남인 김동관 전무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김승연 회장의 의중이 담겨 있어 보인다"고 해석했다.
실제 한화토탈과 한화큐셀코리아의 지배구조를 거슬로 올라가면 한화그룹 IT서비스 담당 계열사인 한화S&C가 있다. 한화 S&C는 김동관(50%) 김동원·김동선(각각 25%) 등 오너 3세가 100% 지배한다.
세 형제는 한화S&C가 100% 지분을 들고 있는 한화에너지를 통해 한화종합화학을, 또 한화토탈과 한화큐셀코리아를 지배한다. 이들은 모두 비상장 기업이다.
그룹의 무게 중심도 3형제에게 실리고 있다.
한화그룹 태양광 부문 관련 지배구조자료=나이스신용평가
한화큐셀코리아의 최대주주가 한화S&C로 바뀌면 기존 1·2대 주주였던 한화와 한화케미칼의 지분율은 낮아진다. 그 결과 김승연 회장이 지배하던 한화큐셀코리아의 최정점도 세 아들로 바뀌게 된다.
김동관 전무는 김승연 회장과 함께 지난 9월 ㈜한화가 추진한 우선주 유상증자에도 참여했다. 김승연 회장은 250억원을, 김동관 전무는 146억원을 출자한다. 출자 후 지분율(보통주·우선주 포함)은 김 회장과 김 전무가 각각 18.84%와 4.28%가 됐다.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와 3남 김동선 한화건설 과장은 각각 1.7%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올해 승진한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한화그룹은 김동원 상무의 경영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9월 한화생명에 입사한 김 상무가 지난해 전사혁신실 부실장으로 일하면서 보험사로는 유일하게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참여하는 등 사업영역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또 보험업계 최초로 핀테크 기반의 중금리 신용대출인 한화스마트 신용대출을 출시해 시장을 선점하는 등 성과를 냈다고 덧붙였다. 김 상무는 핀테크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3남인 김동선 한화건설 과장은 갤러리아면세점TF를 책임지면서 그룹 내 건설과 면세점 분야를 맡게 됐다. 그룹의 기대가 큰 면세점 사업이 좋은 성과를 낼 경우 김 과장의 그룹 내 입지도 무시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경영권 승계 핵심 '한화 S&C'
그러나 승계와는 별도로 그룹 지배구조 개편작업도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원샷법의 적용을 받으면 역삼각합병이 가능하다. 한화는 100% 보유한 자회사를 물적분할하고 한화 S&C와 합병하면 오너 일가는 한화의 지분을 교부받게 된다. 한화에서 100% 물적분할 하는 경우 주주총회가 필요없으며, 한화 S&C도 오너 일가가 10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주총회가 필요없고, 주식매수청구권도 발생하지 않는다. 결국 한화 S&C는 한화가 100% 보유한 계열사가 된다.
특히 한화 S&C의 자산가치는 10조원 수준으로 한화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 가량이다. 이 기업의 가치가 더욱 커질 경우 3세들의 지분은 늘어난다.
한화S&C가 기업 가치를 키운 뒤 상장해, 한화와 1대 1로 합병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양형모 연구원은 "3세 경영체제를 준비하는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한화 S&C의 경우 한화와의 합병이나 역삼각합병 등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화는 지주회사 전환에 대해 말을 아낀다. 이유가 있다.
한화가 지주회사로 전환하게 되면 금융계열사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화는 지난 4월6일 한화생명 주식 3058만5795주(지분율 3.5%)를 시간외 대량매매로 한화건설에 처분했다. 처분금액은 2000억3100만원이다. 한화측은 "한화건설의 재무안전성을 위해 추후 담보로 쓸 수 있는 한화생명의 주식을 선제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지분 매각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한화는 같은 날 한화건설이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RCPS) 2000억원어치(70만1800주)를 사들였다. 결국 그룹은 건설도 지원하고 생명의 경영권도 지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