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10월 빌리 타인 선장이 이끄는 어선 안드레아 게일호. 대서양 북부의 항구 글루체스터에 입항한다. 배 안에는 네 명의 어부들과 함께 큰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탄 바비가 타고 있다. 그러나 출항 후 악천후가 계속되고 남쪽에서 발생한 허리케인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풍으로 변해 배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천둥과 번개가 쉴 새 없이 내리꽂는 칠흑 같은 바다, 악마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파도, 거대한 파도 아래는 뒤집어지기 직전의 배들이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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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장면이다.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세계경제의 미래를 예언하며 쓴 뒤 '공포의 경제'를 빗댄 상징 처럼 됐다.
전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이 '퍼펙트 스톰' 앞에 서 있는 위기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워싱턴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서 세계 각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과 환율전쟁을 치러야 할 위기에 놓여있는 것.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자유무역협정(FTA)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발톱을 세우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미국의 통화정책도 안갯속이다. 트럼프는 "나는 저금리를 선호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시장에서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2월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9일 트럼프가 몰고 온 '퍼펙트 스톰'은 아시아 증시를 집어삼켰다.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VKOSPI)는 전 거래일보다 16.59% 급등한 19.26에 장을 마쳤다. 브렉시트 여파로 시장이 크게 휘청거린 지난 6월 27일(19.47) 이후 최고치다. 통상적으로 VKOSPI는 코스피가 급락할 때 반대로 급등하는 특성이 있어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포지수'로 불린다.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45.00포인트(2.25%) 하락한 1958.38로 거래를 마쳤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종가는 달러당 1149.5원으로 전날 종가보다 14.5원 올랐다. 하루 환율 변동 폭은 28.6원으로 브렉시트 투표가 있었던 지난 6월 24일(33.2원)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아시아 증시도 '퍼펙트 스톰' 이 몰고 온 쓰나미에 침몰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닛케이평균주가)는 5.36% 급락한 1만6251.54로 마감했다. 대만 가권지수도 2.98% 폭락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정책 불확실성 심화 등으로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국제금융센터는 주가가 순식간에 폭락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바클레이스는 미국의 S&P 500지수가 최대 13%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의 신흥시장 지수도 최소 10% 떨어질 것이라고 CMC 마켓은 전망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도 최근 '트럼프: 전 세계적인 낙진(The global fallout)'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당선 이후 글로벌 증시가 고점에서 저점까지 5% 가량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에도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0%대 성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트럼프가 한·미FTA를 불공정 무역협정으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중국을 미국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주범으로 보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한국 경제는 '고래 싸움에 끼어있는 새우' 신세가 될 수 있다.
안으로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분위기다. 가계부채는 1300조원에 육박하고 있고, 부동산 가격은 거품 붕괴를 우려할 수준이다. 기업들은 잔뜩 몸을 움츠렸다. 조선·해운 업종은 물론이고 삼성·현대차그룸도 비상경영을 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 국정은 마비 상태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소비자학과)는 한국경제를 두고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는데, 엔진이 고장난 조각배에 선장도 구명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 2017년 키워드로 '치킨 런'(CHICKEN RUN)을 제시했다. '치킨 런'이란 지난 2000년 개봉한 애니메이션으로, 1950년대 영국의 한 닭 농장을 배경으로 닭들이 잡혀먹히기 전에 탈주를 시도하는 이야기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