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늪이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국내 상장 기업의 실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한국 산업을 이끄는 '빅2(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부진도 뼈아팠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매출의 12.52%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나머지 기업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의 힘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 셈이다.
불황 속에서도 빛나는 업종은 있었다. 은행 등 금융업종과 건설업종이 선전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노골적으로 '보호무역'을 외치고 있다. 국제무역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각종 무역협정의 재협상 또는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워 온 만큼 어떤 식으로든 수출주도형인 우리나라 경제와 기업에 악영향을 줄 전망이다.
◆ 영업익 증가율 한 자릿수로 둔화…갤노트7파문 등 영향
15일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연결재무제표 기준 유가증권시장(코스피) 결산법인 511개사의 올해 3분기(7~9월) 매출액은 392조5277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9% 감소한 것이다.
순이익도 20조7591억원으로 6.40% 줄었다.
반면 영업이익은 5.44% 증가한 28조9923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은 상반기에 이어 증가세를 지속했지만,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인 2분기와 비교하면 크게 둔화된 성장세다.
기업이 얼마나 장사를 잘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익 지표도 소폭 개선에 그쳤다.
3분기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7.39%로, 전년 동기의 6.81%보다 0.58%포인트 개선됐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5.29%로, 0.20%포인트 낮아졌다.
이는 기업이 1000원짜리 상품을 팔아 74원가량을 남겼다는 얘기다. 실제로 손에 쥔 돈은 53원가량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실적 충격이 주된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는 3분기 매출 47조8200억원, 영업이익 5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51조6800억원보다 7.5%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7조3900억원보다 29.7% 줄어든 수치다.
현대차도 불황의 그림자를 비켜가지 못했다. 3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40% 가량 감소했고 기아차 역시 30% 넘게 줄어 들었다.
건설, 조선, 금융 등 일부 업종의 이익 개선세는 이들 '빅2'의 실적 부진을 일부 상쇄했다.
장희종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와 반도체 쪽의 쇼크만 아니었으면 3분기 실적도 전반적으로 괜찮은 수준"이라며 "금융이나 건설, 조선과 같은 경기민감주의 실적이 뒷받침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3분기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누적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0.49% 감소한 1186조274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1.67%, 10.79% 늘어난 91조9621억원, 68조3671억원으로 실속있는 장사를 했다.
◆트럼프 보호무역, 기업 실적 옥죄나
글로벌 수요 부진 속에서 매출 성장세가 뒷받침되지 않는 구조는 여전한 한계로 지적됐다.
외형 성장이나 판매 증가보다는 원가 절감과 구조조정 등 불필요한 축소를 통한 이익 증가 추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출 성장이 담보돼야 이익 개선세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장사가 안 돼 비용절감을 통해 이익을 내는 불황형 흑자 구조가 이어졌다"며 "그러나 비용절감을 통한 이익 증가는 내년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적 모멘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무역이나 수출 부문에서 불확실성이 가중된 측면도 우리 경제에 부담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미 한국경제 곳곳에서 신음이 들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419억 달러, 수입액은 348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3.2%, 5.4% 줄었다.
미국 보호무역주의는 한국경제에 치명타다. 이미 글로벌 경제 저성장으로 위축된 세계교역이 더욱 쪼그라들 수 있어서다. 이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경제의 위협요인이다.
LG경제연구원의 신민영 수석연구위원과 정성태 책임연구원은 '반세계화 시대의 세계화'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반세계화는 일시적 흐름이 아니라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 우리 경제와 기업활동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기업활동에 새로운 형태의 규제와 리스크(위험)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문호 기자 k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