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채 왕(king of debt)이다. 부채를 사랑하고 부채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한다. 미국의 빚이 늘어나 문제가 발생하면 국채를 가진 채권자들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지난 5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CNBC 인터뷰)
트럼프는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국제금융거래에서 기본이 되는 돈)인 만큼 여차하면 달러를 찍어내 부채를 갚겠다고 한다. 또 국채를 찍어 다른 나라에 판 뒤 경제가 좋아지지 않으면 채무 재조정이나 금리 조정 등의 방법을 써 돈을 떼먹겠다는 놀부 심보도 드러낸다.
트럼프가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을 앞세워 세계 경제를 흔들 태세다. '금융 굴기(우뚝 일어섬)'를 추진 중인 중국과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편입이 결정된 지난 9월 "SDR 도입 이후 처음으로 개발도상국 통화가 준비통화로 편입돼 중국이 글로벌 금융체계로 융합됐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이정표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인정한 것과 동시에 SDR의 대표성과 흡수력을 증강해 국제 금융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G2(미국과 중국) 간의 '기축통화 전쟁'이 다시 가열되는 양상이다.
10월 1일 위안화 SDR 정식 편입 후 위안화 비중자료=대신증권
◆ 달러에 도전하는 中 위안화
2009년 3월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전 세계 공용의 슈퍼 통화로 격상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미국과 중국 간 기축통화 논쟁의 서막이다.
IMF가 1969년 도입한 SDR는 미국 달러, 유로화, 엔화, 파운드 등을 가중평균해 가치를 결정하는 지불준비 수단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세계 경제가 휘청이면서 미국(달러)의 위상도 땅에 떨어졌다. 중국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중국 정부는 먼저 국제 금융시장에서 발언권을 높이는 작업을 추진했다. 2010년 11월 단행된 IMF 회원국의 의결권 조정에서 중국의 의결권은 3.65%에서 6.07%로 높아졌다. 미국, 일본에 이어 IMF내 세번째로 목소리가 큰 국가가 된 것이다.
2011년 1월 유럽을 방문한 이강 인민은행 부행장은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유럽과 함께 기축통화 다원화를 논의하고 싶다"며 기축통화 논쟁에 다시 불을 지핀다. 같은 달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달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달러로 대표되는 현행 기축통화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 국빈방문을 불과 이틀 앞두고서다. 후 주석은 당시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달러 중심의 세계 통화 체제를 '과거의 유물'이라고 폄하했다. 현 체제의 변경을 추진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 노력 덕분에 중국 위안화는 지난 10월 1일부터 IMF의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편입했다. 기축통화 반열에 오른 것이다. IMF가 위안화의 SDR 편입 심사를 시작한 지 5년 만이다.
글로벌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 SDR 통화 바스켓 편입을 두고 달러의 금융 패권에 도전하는 위안화의 대장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세계무대에서 영향력도 확대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해 만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가 전초기지다. 달러화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체제를 양분하는 게 목표다. AIIB란 아시아 지역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대는 국제금융기구다. 그동안 미국이 달러화 보유국으로 발권능력을 과도하게 이용하고, 자국 경기 부양을 위해 달러화 약세를 추구해 아시아나 유럽, 제3세계 국가들은 중국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다.
통화별 글로벌 외환보유고 비중(위안화는 기타)
◆ '팍스 달러리움'은 계속될까
달러는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후 지금껏 전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고한 달러화 제국에 약간의 균열이 생겼지만 달러가 주도하는 세계 경제 질서인 이른바 '팍스 달러리움'(Pax Dollarium·달러에 의한 경제 질서)이 아직도 건재해 보인다.
각종 통계를 보면 위안화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국제 외환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0.9%이다. 달러(41.73%), 유로화(30.93%)에 한참 뒤처져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위안화는 지난 8월 기준으로 국제결제에서 차지한 비중이 1.86%에 불과하다. 미국 달러(42.5%)와 유로화(30.17%), 파운드화(7.53%), 일본 엔(3.37%)에 이어 5위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올해 4월 기준 거래비중도 총합 200% 기준으로 달러 88%, 유로 31%, 엔 22%, 파운드 13% 등과 격차가 큰 4%에 불과하다고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거침없는 말을 내뱉은 배경도 기축통화 힘을 믿기 대문이다. 그는 후보 시절 "미국 정부는 무엇보다도 돈(달러)을 찍어내기 때문에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기축통화로 미국의 힘을 보여 주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내 한 전문가는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기 위해 위안화 환율을 더욱 문제삼을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 4월 중국을 한국, 일본, 독일, 대만과 함께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한 점을 보면 알수 있다"고 말했다.
UBS는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미국의 대 중 압박이 크게 강화될 경우 중국이 내년 중 위안화를 큰 폭으로 절하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국 통화가치 불안 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