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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계

위기의 전경련, 거세지는 '환골탈태' 목소리

예정된 자체 개혁안, 국민 눈높이 못맞추면 '복병' 만날수도



"경제인 여러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전경련 회관의 신축을 계기로 21세기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국민에게 더욱 신뢰받고, 모든 경제주체들이 함께 상생의 경제를 만드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전경련이 미래 대한민국의 '창조'역량을 끌어올리면서 함께 땀 흘리는 '협동'의 중심에 서서 '번영'의 미래를 이끌어 가길 바라면서, 전경련 신축 회관 준공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2013년 12월 17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회관 신축 준공식에 참가한 박근혜 대통령이 축하를 하면서 전한 말이다.

이날 준공식에는 박 대통령을 비롯해 허창수 전경련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재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하며 새 건물 완공을 축하했다.

'창조, 협동, 번영.'

박 대통령의 축사에 담긴 이 세 단어는 다름아닌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전경련회관이 첫 준공됐을 때 전경련에 써준 내용이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였다.

'創造, 協同, 繁榮.' 한자로 써 있는 이 단어는 지금도 전경련회관 옆에 있는 휘호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1979년 10월26일 사망한 박 전 대통령은 회관 준공식(11월16일)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재계에 전한 마지막 선물이었던 셈이다.

아버지는 전경련회관의 초석을 세우고, 그 딸은 새 전경련회관을 대통령 재임기간에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썼던 이 세 단어를 34년이 훌쩍 지나 딸이 다시 꺼내들었다. 역사는 그렇게 되풀이된다.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로 모습을 드러낸 전국경제인연합회. 지난 2010년에 창립 50주년을 맞기도 한 전경련이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 시절로 접어들면서 최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기 위해 야심차게 탄생한 전경련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며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여론으로부터 '해체'까지 요구받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20일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기업과 정부를 연결하는 것이 전경련 같은 단체의 역할이 아니겠느냐. 정권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단체나 기업이 누가 있겠느냐"는 말로 재계의 최근 침체된 분위기를 대신 전했다.

하지만 전경련이 진퇴양난에 빠져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권의 '모금창구' 역할을 하며 대기업들로부터 774억원을 모아 전달한 이번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사건뿐만 아니라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일해재단 자금 모금 사건,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차떼기' 사건 등 잊을만하면 한번씩 등장하는 정경유착의 핵심에 늘 전경련과 대기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 비공개회동 등을 통해 현 정권과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를 한 대기업 총수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갔다. 대한민국 기업의 이면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지난 10월 중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전경련이 목적에 맞게 활동하고 있느냐'라는 물음엔 응답자의 64.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다'는 21.4%에 그쳤다. 또 '전경련 해체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찬성한다'가 37.8%, '반대한다'가 37.4%로 비슷했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은 "설문 당시엔 전경련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이 크지 않던 때였지만 지금 설문조사를 다시 하면 '해체' 여론이 더욱 많을 것"이라면서 "전경련 해체를 강제할 수단은 없지만 이번 (최순실 게이트)사건에 연루된 책임에 대해 전경련은 국민들에게 반드시 사과해야 하고,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전경련)회원사들은 집단적으로 탈퇴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전경련도 올해안에 자체 개혁안을 내놓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에는 회원사들의 중지를 모으기 위해 최고결정기구인 회장단회의를 계획했다 돌연 취소하는 등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전경련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찰 조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섣불리 개혁안부터 내놓을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회원사들로부터 의견을 더 듣고 검찰 조사 추이를 지켜본 뒤 개혁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한 차례 취소된 회장단회의도 언제 다시 열지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경련의 환골탈태를 놓고 어느 때보다 이목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 연루에 대한 대국민 사과, 책임자 문책, 대규모 조직개편, 역할 재정립 등이 담긴 개혁안이 국민들 눈높이를 맞추지 못할 경우 또 다시 복병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특히 전경련 개혁뿐만 아니라 이참에 정권과 기업의 뿌리깊은 유착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채이배 국회의원(국민의당)은 "민주화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해묵은 정경유착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되고 있었는데 '최순실'이라는 특정 인물이 보여준 후진적인 정경유착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다시 뒤로 되돌아갔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면서 "게다가 (이번 사태에서)주요 대기업들의 총수가 움직이고 그의 말 한마디에 수십억원이 쉽게 조달되는 등 (총수 중심의)전횡적인 경영행태가 만연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강력한 지배구조개선이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참에 이사회 권한 강화, 주주들의 감시 강화, 공정거래법 등 기존 제도의 예외없는 적용 등을 통해 기업의 의사결정구조를 더욱 투명하게 하고, 강력한 법 적용을 통해 기업이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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