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IBK투자증권>
1969∼1973년 미국 증시에서 가장 유행한 말은 '니프티 피프티(nifty-fifty)'였다. 연기금 투자가 몰리면서 미국 증시를 주도했던 이른바 '기관화 장세'를 달리 표현한 말이다. 당시 기관투자가는 증시의 주도권을 움켜쥐고 철저히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투자했다. '멋진 50종목'이 바로 기관들의 투자 대상이었다. 이들 50종목 주가는 시장 평균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빈자리를 연기금이 채우면서 연말 '니프티 피프티'장세가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든다. 연금·보험 등 은퇴준비 자산이 늘면서 기관의 힘은 갈수록 세지고 있다. 여기에 금융위가 사모펀드 활성화에 나서면서 기관이나 거액 자산가들의 영향력도 커졌다.
◆ 연기금 최대 7.3조 매수 여력
국민연금이 위축된 투자 심리를 살릴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국내 증시 '큰손'인 국민연금은 최근 위탁 운용사를 앞세워 1조원 규모의 주식 쇼핑에 나서기로 했다. 또 시가총액이나 매출 규모가 작거나 거래량이 적은 1000여 개 종목에 대한 투자 제한도 없애기로 했다. 매출 300억원 이상, 6개월 하루 평균 거래대금 5억원 이상 종목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내부 지침을 폐지했다.
국민연금의 투자 여력은 얼마나 될까.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7월 말 기준 541조원에 달하는 기금적립금 가운데 18% 가량인 95조5000억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금본부가 직접 투자하는 자금이 50조원, 외부 자산운용사에 위탁 형태로 굴리는 자금이 45조원이다.
IBK투자증권은 국민연금의 투자 여력을 약 11조6000억원(18일 기준)으로 추산했다. 이를 과거 자료로 매년 말 실제 주식 비중을 감안할 때 약 6조3000억원의 투자 여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국민연금 외의 우정사업본부와 교직원공제회 등 연기금의 매수 여력까지 고려하면 연말까지 국내 연기금의 추가 매수 가능 금액은 약 7조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IBK투자증권 김정현 연구원은 "외국인의 순매도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연말까지 기대할 수 있는 순매수 주체는 연기금이다"면서 "지난 2000년 이후 매년 11월과 12월에 연기금의 누적 순매수를 보면 금융위기의 충격이 있었던 2009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순매수를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도 "국내 기관, 특히 연기금 매매패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추가 매수여력, 연말 배당을 고려할 때 향후 연기금이 코스피 수급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투신권의 투자 여력도 숨통이 트이고 있다.
11월 국내 주식형 펀드로 약 7084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9개월 만이다.
◆ 삼성전자, 바이오로직스 등 주도
70년대 시장을 떠들석하게 했던 '니프티 피프티' 장세에서는 코카콜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필립모리스, P&G, 맥도널드, 월트디즈니 등이 주목받았다.
한국시장은 어떨까.
대형 우량주는 전통적으로 기관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유통 주식수가 많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지배구조와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다. 또 배당매력도 주목받고 있어 배당수익과 주가 상승을 함께 누릴 수 있다. 글로벌 경기가 아직 불확실하고, 가격만 봐도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연말 '니프티 피프티' (기관 주도)장세가 펼쳐진다면 대형주가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증권은 IT, 금융, 소재·산업재 등을 관심업종으로 꼽았다.
IBK투자증권은 삼성전자, SK, SK하이닉스, S-Oil,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건설, 롯데케미칼, 고려아연, 현대해상 등을 꼽았다.
김정현 연구원은 "연기금의 순매수가 외국인의 순매도에 따른 지수 하락을 방어해 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지수 뿐만 아니라 종목 차원에서도 연기금의 순매수가 유입되고 있는 종목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민 연구원도 "연기금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가져간다"면서 "트럼프 정책 기대감과 이로 인한 나비효과(금리 상승, 달러 강세, 원화약세)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외국인이 쓸만한 대형 우량주를 싹쓸이 했다는데 있다. '풍요속 빈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