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저녁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 대국민 4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과 일대 도로에서 열렸지만 청와대는 무대응으로 침묵하듯 불을 끄고 문을 닫아 버렸다./뉴시스
최순실 게이트가 한국경제의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국정 운영은 전면 중단됐고 경제주체들의 소비심리는 얼어 붙었다. 하반기 기업 구조조정과 13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를 해결해야 할 경제정책 콘트롤타워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5대 대통령 당선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헤쳐나갈 정치 리더십도 꽉 막힌 상태다. 일각에선 이번 기회에 50여 년 이상 이어져 온 정경유착(政經癒着·정치계와 경제계가 서로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서로 깊은 관계를 가져 하나가 되는 일)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20일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을 미르·K스포츠재단의 불법 설립과 강제 모금, 청와대 문건 유출 등의 혐의로 피의자로 입건했다.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등의 범죄혐의에 상당 부분 공모 관계에 있다는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헌법에 규정된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으로 당장 기소할 순 없지만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리아디스카운트' 우려
현직 대통령이 재직 중 직무와 관련한 범죄 혐의 피의자로 입건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때문에 대내외 신뢰도 하락에 따른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을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양재찬 한국외대 겸임교수는 "최순실 사태는 대통령 개인의 명예는 물론 대한민국 국격의 손상"이라며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지 않으면 한국 기업들의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코리아디스카운트'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 초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5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공공부문 투명도 부문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7위를 기록했다. OECD 가입국 중 한국보다 낮은 국가는 헝가리나 터키, 멕시코 등 6개국에 불과할 정도로 낮은 순위다.
OECD 사무국은 최근 '뇌물 척결' 보고서를 통해 "부패는 민간 부문 생산성을 낮추며 공공 투자를 왜곡하고 공공재원을 잠식한다"며 경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이 정치경제에 만연한 부정부패 수준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향상시킨다면 국내총생산(GDP)을 0.65%포인트가량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한국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선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노력을 기울여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정 시스템 개혁·기업 지배구조 개선해야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간 악의 고리, 정경유착을 끊기 위해선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로서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공모해 대기업을 대상으로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 774억원을 거둔 것과 같이 대통령과 정부의 요구를 기업들이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권력구조가 대통령 중심제고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돼 결국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成敗)가 좌우될 수밖에 없다"며 "권한이 집중되는 현재의 대통령 중심제는 더 이상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황 의원은 "이번에야 말로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되는 국정운영 시스템을 개혁하는 방향으로 개헌 논의를 좀 더 활발히 이후고 국가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역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등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으론 기업들이 정부의 강제모금에는 협조하지 않겠다는 자정결의 선언을 하고 정치권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차떼기' 사건을 막기 위해 관련 법을 제정하면서 악행을 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입법권을 가진 의회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기업이 튼튼하고 건실하면 대통령이 아무리 총수를 압박해도 돈을 함부로 낼 수 없다"며 "정경유착 근절을 위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정치권 뿐만 아니라 재계 전반의 기업 문화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며 "변화의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