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이번 인사 키워드는 갤럭시노트7과 전장사업 강화다. 사진은 서초동 삼성 사옥. /뉴시스
어수선한 정국으로 연말 인사 시즌을 준비하지 못하던 대기업들이 하나 둘 조직정비 준비에 들어갔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들이 검찰의 최순실 관련 의혹 중간수사결과 발표 이후 인사 윤곽을 잡기 시작했다. 주요 그룹 총수와 경영진이 검찰에 줄 소환되며 인사를 준비하기 어려웠지만 수사 범위가 정리되며 여유를 찾은 것이다.
혼란한 시국과 트럼프 리스크 등의 영향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올해 인사 시즌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소폭 인사로 조직을 정비하며 안정을 꾀할 전망이다.
◆삼성, 갤노트7 원인 규명·전장사업 강화에 집중
삼성그룹은 이번 인사 시즌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삼성은 매년 12월 첫 주에 사장단 인사를 하고 그 다음 주에 임원 인사를 시행해왔다. 지난해에는 6명이 사장 승진을 하는 등 15명이 사장단 인사 대상이었다. 2014년 11명을 제외하고는 2010년부터 16~18명 수준을 이어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를 삼성이 지원한 것과 관련해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만큼 인사가 늦춰질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삼성은 2007년 말 특검 때문에 인사를 하지 못해 다음해 5월과 12월 연달아 실시한 바 있다.
삼성 관계자는 "올해는 예전 특검과 상황이 좀 다르다"며 인사 지연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삼성의 당면 과제는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 규명과 문책이다. 명확한 원인규명을 하지 못하면 시장에서의 신뢰를 잃어버리기에 규명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무선사업부 경영진단도 늦춰졌다. 전략 스마트폰 단종을 계기로 업무 프로세스 조정과 품질관리조직 강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무선사업부 임원 20% 감축설도 꾸준히 돌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확인된 사항은 없다.
지난달 등기이사로 선임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일단은 현 위치에서 대기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이 당장 이사회 의장을 맡거나 회장으로 승진하기에는 외부 여건이 나쁘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전장 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한 만큼 전장사업팀을 확대하고 시너지 극대화를 추진할 필요도 있다. 삼성전자 전장사업팀 박종환 부사장은 이와 관련해 "스마트카 1위 전장 부품업체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과 함께 바이오 사업 강화를 위한 움직임도 엿보인다.
SK그룹의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한 집단경영체제는 유지될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본사. /뉴시스
◆현대차, 마이너스 성장에 승진 인원 줄어들 듯
12월 말에 인사를 할 예정인 현대차그룹은 임원 승진자가 예년에 비해 줄어들 전망이다. 실적 악화로 지난달부터 51개 계열사 전체 임원 1000여명의 급여를 10% 삭감하며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작년에도 전년 대비 65명 줄어든 368명 규모의 임원승진 인사를 한 바 있다.
다만 IT(정보기술)·친환경차 관련 연구개발 부문과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부문은 임원 승진이 유지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LG, 전자 3인 체제 유지… 부회장 승진자 나오나
LG그룹도 전년과 같이 11월 30일 전후로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상반기 전략 스마트폰 G5의 판매 저조로 MC사업본부가 이미 조직개편·인력감축을 겪은 만큼 인사 규모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조성진 H&A사업본부장, 조준호 MC사업본부장, 정도현 CFO라는 LG전자 3인 대표 체제도 구성된 지 1년 정도에 불과해 유지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다만 지난해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가 부회장으로 승진한 만큼 올해도 승진자가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한편 지주사 ㈜LG는 구본준 부회장이 신성장사업단을 맡아 신사업 발굴에 힘쓸 예정이다.
◆SK, 수펙스 중심 집단경영체제 유지
SK그룹은 예년과 동일하게 12월 중순 인사가 예정돼 있다. 다만 인사 규모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연례 CEO 세미나에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실천을 강하게 주문했다. 때문에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를 중심으로 큰 폭의 인사이동을 예측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는 등 최근 들어 변화를 주기에 적당한 상황이 아니라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조직 개편 역시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SK그룹 고유의 수펙스추구협의회 집단경영체제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자리를 유지할지, 교체된다면 누가 의장직에 오를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저성장과 실적 부진 등 위기감이 조성돼 큰 폭의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며 "예상외의 미 대선 결과가 나오고 최순실 게이트로 시국이 뒤숭숭해 대대적인 인사가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