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내달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면서 우리나라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져 온 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외자유출을 막기 위해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한은 역시 금리 인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 빚과 부채 상환에 소득의 40% 이상을 쓰는 한계가구 등 금융 취약계층이다. 그간 저금리로 은행 돈을 가져다 쓴 서민과 자영업자들이 금리 인상 시에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취약계층의 이자상환 부담이 커지면 지금도 위태로운 내수가 더욱 위축되고 기업의 소비와 투자가 줄어드는 등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며 "경제 컨트롤 타워가 부재한 현 상황과 맞물려 이는 한국경제의 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주담대 평균금리 3% 돌파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앞다퉈 금리를 올리고 있다.
지난달 은행권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만기 10년 이상) 평균금리는 연 3%대를 돌파했다. 일시상환방식의 주담대는 이미 평균금리 3%대를 기록하고 있다. 은행권의 분할상환방식 주담대가 다시 3%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 4월 이후 6개월 만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가산금리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은행연합회의 10월 공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16개 은행이 취급한 만기 10년 이상의 분할상환방식 주담대는 평균금리 3.01%를 돌파했다. 신한은행 연 3.03%, KB국민은행 연 3.0%, 우리은행 연 3.04%, NH농협은행 연 3.07% 등을 기록했다.
통상 대출금리는 은행권 조달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정해진다. 결국 가산금리가 은행 대출금리의 상승세를 이끌었단 분석이 나온다. 가산금리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1.01%에 그쳤던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 등 4대 은행의 주담대 평균 가산금리는 지난달 1.46%로 0.45%포인트 뛰었다. 같은 기간 신규 주담대에 적용되는 기준금리는 평균 2.1%에서 1.49%로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우리은행의 경우엔 가산금리가 평균 1.7%로 뛰면서 기준금리 평균 1.47%보다 높아지기도 했다.
이달 들어서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21일 기준 변동금리형 주담대 금리를 지난달 말보다 0.26%포인트, KB국민은행은 0.16%포인트 상승했다. 기준금리인 코픽스(신규취급액 기준) 오름폭이 0.06%포인트에 그친 것과 비교해 가산금리는 0.1~0.2%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이처럼 은행들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가산금리 조정에 들어가자 금융당국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1일 임원회의에서 "대출금리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지만 사회적 비난을 초래할 정도의 과도한 금리 인상이 없도록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동금리' 자영업자 큰 부담
한국은행은 최근 지난해 3월 말 기준 전체 금융부채 보유 1072만 가구 중 12.5%가 가계부채 한계가구(금융자산보다 금융부채가 많고 가처분소득에서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는 가구)라고 밝힌 바 있다. 한은은 이에 따라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한계 가구는 8만8000여 가구, 부실위험가구는 5만9000여 가구가 더 늘 것으로 추산한다.
특히 변동금리를 취하는 자영업자의 경우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영업자 대출은 총부채상황비율(DTI) 등 금융당국의 규제 사각지대에 있고 대부분 변동금리다.
한은 관계자는 "신용이 떨어져 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은 서민들은 금리 인상 시 신용불량자로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2금융권 등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비중은 올 1분기 26.9%까지 치솟았으며 저소득층 대출자 비중도 33.6%까지 오른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가계부채 보고서에서 전체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이 지난 2012년 17.1%에서 지난해 24.3%로 7.2%포인트 올랐다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가계부채 구조개선을 지속해 채무부담을 경감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가계부채의 연착륙과 가계소득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지적이 계속되자 지난 17일 서민·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중금리 대출 활성화 등 서민 금융부담 경감책이 주로 다뤄졌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당시 간담회에서 "금리 인상이 현실화되면 가계부채 관리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고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서민·취약계층의 고통이 커진다"고 문제 인식을 밝힌 바 있다.
24일엔 최근 가계부채 동향과 향후 대응방안을 발표한다. 가계부채가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동산 경기에 대한 정부 정책 방향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정부와 당국의 가계부채 대책이 먹혀들지 않고 중장기적 관리 방안이 부재한 상황 속에 은행들이 저마다 무차별적으로 가산금리를 올리고 있다"며 "24일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대책이 얼마나 명확하게 다뤄지느냐에 따라 한국경제의 미래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