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인증이 2~3개월 단위로 있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서류만 받아놓고 소식이 없어요. 9월이면 하겠지 하던 게 벌써 11월이 끝나갑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며칠 전 중국 정부의 배터리 모범기준 심사에 대해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중국 정부가 보호무역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에는 차일피일 미루던 심사 기준을 종전의 40배로 끌어올렸다. 생산능력 기준 80억와트시(Wh)는 대부분의 중국 업체들조차 통과할 수 없는 기준이다.
과거 중국 정부는 배터리 모범기준 인증을 획득한 기업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보조금이 차 값의 최대 절반까지 나오기에 보조금이 지급되는 제품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해진다. 중국은 지난해 발생한 홍콩 전기버스 폭발 사고를 빌미로 올해 초 폭발과 화재 위험성을 내세워 차량용 NCM 배터리에 보조금 지급을 끊겠다고 밝혔다. 이후 삼성SDI 등이 중국 전기 버스에 공급하던 배터리 납품이 끊겼다.
중국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배터리 모범기준 인증을 만들고 심사 통과 여부를 보조금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접수 서류에 중국 내 생산이력 1년을 요구했고, 중국에 공장을 세운 지 1년이 되지 않았던 한국·일본 기업들은 모두 탈락했다. 그러자 중국 장화이기차, 위퉁 등 현자 완성차 업체들이 탈락을 이유로 한국 제품 사용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 시장에서도 한국 배터리가 선호된다고 말한다. 중국 기업에 비해 고밀도 배터리를 저렴하게 생산한다는 이유다. 짝퉁 배터리와 전동휠 폭발 사고 등에서 보듯 중국 제품들의 안전성이 취약한 것도 작용했다.
하지만 연구개발로 벌여놓은 격차는 정부 보조금이라는 무기에 손쉽게 역전됐다. 중국 정부의 의도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자국 시장을 잠식할 기술력을 갖춘 외국 기업의 진입을 막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국내 기업들에게 경쟁력을 확보하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부는 지난 5월 한중 경제장관 회담에서 관련 문제를 언급한 이후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최근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어선 단속에 공용화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간 자국민들의 불법행위를 외면하던 중국 정부는 그제야 자국 어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기 시작했다. 배터리 시장에서도 정부가 제 역할을 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