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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계

28년만에 청문회장 불려간 총수들…한바탕 '고역', '모르쇠'에 눈살



'때린 놈은 도망가고 맞은 놈만 경찰서로 잡혀가 혼쭐이 났다.'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재계 청문회의 총평이다.

이날 재계 총수들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소속 여야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일부 회피성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청와대, 정부의 요청을 일개 기업이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당시 전두환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제5공화국 비리 조사 특별위원회'가 국회 차원에서 꾸려졌다.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재단'에 대기업들이 '아웅산 테러' 희생자 유가족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많은 돈을 낸 것을 두고 정경유착 의혹이 일면서 '5공 특위'가 대기업 총수들을 청문회장으로 불러들였다.

28년이 훌쩍 지난 2016년에도 주요 재계 수장들이 청문회장으로 불려나갔다. 역사의 반복이다. 정경유착이 그 동안 끊어지지 않았다는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지만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말처럼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이었다. 기업이 정경유착을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현실을 돌려 말한 것이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 역시 "청와대의 (출연)요청을 기업이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회장도 전경련에서 기업별로 할당을 하니까 돈을 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청문회에서 '을'의 입장에 서 있는 재계 총수들만 난타를 당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등은 7일 열리는 2차 청문회에 재판이나 건강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으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아예 출석통보서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김성태 국조특위위원장이 "우 전 수석의 거소 확인을 위해 현장에 국회 입법조사관 등이 우 전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 씨의 집에 가서 거소 확인을 해달라"고 지시했지만 우 전 수석을 강제로 끌고 올 방법은 없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등에 관한 법률 등 현행법상의 처벌규정이나 동행명령권만으로는 증인 출석을 강제하는데 한계가 있다. 법적으로는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현실에선 대부분 무혐의·기소유예 처분을 받거나 수백만원의 벌금 정도로 약식기소되는데 그친다.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위원회가 불출석 증인을 대상으로 내릴 수 있는 동행명령권도 마찬가지다. 증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임의동행하는 방식으로 강제력이 없다. 증인이 동행명령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제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실제로 징역형을 받은 사례는 전무하다.

결국 기업인들로부터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 이외에 특별히 거둔 성과가 없고, 7일의 2차 청문회는 핵심 증인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릴 것으로 보여 국조특위의 실효성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그룹 총수들을 청문회에 출석시켜봤자 기대 성과를 거두기 어려워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기업인들의 경우 답변 내용에 따라 향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을 뿐더러 배임행위에 해당할 수 있어 의원들의 다그치는 질문에 즉각적인 대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날 이재용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 "전경련을 탈퇴하겠다" 등의 발언도 이재용 부회장이 결정할 수 있는 범위이긴 하지만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이후의 후속작업이 만만치 않은 데다, 의원들의 요구처럼 전경련을 범죄집단으로 몰아 해체할 경우 이재용 부회장의 발언처럼 전경련에 소속돼 있는 종업원들은 졸지에 범죄집단에 근무한 사람들 취급을 받게 된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여기에 인기부합형 발언, 인격모독형 발언 등이 청문회 중간중간 터져 나온 것도 청문회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다. 심지어 정유섭 새누리당 의원은 이번 청문회 주제와 상관 없는 충남 아산의 빙과류 납품업체를 거론하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이거 한번 좀 파악해보라"고 말해 답을 얻어냈다.

이에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행태가 정경유착 아니냐. 그런 분위기에서 과연 신 회장이 국회의원의 말을 거부할 수 있겠냐. 그러면서 피해자인 기업인들을 꾸짖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국조특위는 오는 14일로 예정된 3차 청문회 증인 채택 안을 의결했다. 이날 채택된 3차 청문회 증인은 총 16명으로 청와대 의무실 간호장교를 거친 신보라 대위와 조여옥 대위를 포함해 서창석 전 대통령 주치의, 이병석 전 대통령 주치의, 김원호 전 청와대 의무실장, 김영재 원장, 김상만 원장, 차광렬 차움병원 총괄회장 등 청와대 미용주사 시술 의혹 관계자들이 대거 채택됐다.

특혜 채용 의혹을 받은 윤전추·이영선 청와대 행정관도 이름을 올렸고 정귀양 전 대통령 자문의, 이임순 순천향대 서울병원 교수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밖에 청와대로부터 보복인사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정기택 전 보건산업진흥원장도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김석균 해양경찰청장과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 등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증언을 해줄 수 있는 증인들도 포함됐다. 여야는 이들 외에도 추가협의를 통해 증인을 추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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