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됐던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 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의 재계 청문회에서 황당한 얘기가 나왔다. 이날 정유섭 새누리당 의원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롯데 면세점 얘기를 지적하다가 갑자기 청문회 주제와 상관 없는 롯데그룹의 갑질 사례를 꺼냈다.
롯데푸드의 갑질로 중소 협력업체가 도산했다고 말을 꺼낸 정 의원은 충남 아산의 빙과류 납품업체를 거론하며 신동빈 회장에게 "이거 한번 좀 파악해보라"고 요구했다. 신 회장이 "그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알아보겠다"고 하자 정 의원은 신 회장이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한 것을 거론하며 중소기업과의 상생협약 때 약속한 것들을 지키라며 이 사안을 알아보라고 다시 요구했다. 신 회장은 결국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어찌보면 좀 뜬금 없기도 하고, 갑자기 저런 얘기를 왜 꺼내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런 식으로 정경유착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날 국회의원들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등에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준 것을 지적하면서 왜 'No'라고 얘기를 못하느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라며 기업인들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정작 그들은 그 자리에 나온 기업인들에게 또 다른 정경유착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정경유착이 과연 기업인들만의 잘못일까. 정경유착이 한쪽 만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일까.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서로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은 것이고 그 관계를 통해 불법적인 일이 자행되면 그게 정경유착이 된다. 한쪽만 아쉬우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쪽만의 요구로도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바로 위압적인 상황에서다. 이번 사건처럼 기업인들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구체적인 '딜'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후 실무진들이 달라붙어 서로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협의했다. 그 협의 내용이 법에서 정한 것을 넘어서면 정경유착이 되는 것이다.
이날 청문회에서 또 다른 국회의원은 정경유착을 끊으라며 "왜 우리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처럼 'No'라고 얘기를 못하냐"고 질타했다. 그는 이날 자리에 나온 기업인들의 아버지들이 28년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며 그 사이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995년 이건희 삼성 회장은 "경제는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말했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이 회장은 2011년에는 전경련 회의 참석 자리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히 성장해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라고 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다른 기업인들도 비슷하다. 카카오의 이석우 전 공동대표는 검찰의 카카오톡 검열을 반대했다가 결국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치권에 쓴 소리를 하면 정권은 세무조사, 비자금 수사, 배임 의혹 등 다양한 수단으로 기업을 압박한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못 끊는 것, 정치인에게 "No"라고 얘기할 수 없는 것. 이게 우리 현실이다. 청문회장에 나온 70세 전후의 백전노장 기업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정부 시책에 기업은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게 현실이다.
왜 정치인들에게 "No"라는 말을 못하냐고?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걸까? 만약 정말 이런 현실을 모르고 있다면 세상물정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것일테요, 알면서도 그렇게 물어본다면 그건 위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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