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과 삼성·한화·교보 등 생명보험업계 '빅3'가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을 둘러싸고 정면 충돌하고 있다. 당국은 자살보험금 미지급 시 최대 영업권 반납까지 제재를 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3사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소멸시효가 완성된 보험금은 지급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3사는 8일까지 금융감독원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관련 초강력 제재 통보에 따른 입장을 밝혀야 함에 따라 감독당국과의 충돌 양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총자산 400조원에 달하는 3사의 영업권 반납 등 제재가 실현될 경우 업계 내 큰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 결정과는 별개 문제"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3사는 감독당국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제재 관련 소명 기한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모두 관련 입장을 설명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단 방침이다.
각 사 관계자는 공통적으로 "자살보험금 소멸시효와 관련해 대법원 판례가 나오기 전에 보험금을 지급할 경우 최고경영자(CEO)의 배임 시비가 걸려 향후 주주 반발 등 더 큰 문제가 예상돼 지급을 못한 바 있다"며 "현재 대법원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에 대한 보험사의 지급의무가 없다고 판결을 내린 상황에서 금감원의 (일괄)지급 방침은 당위성을 갖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감독당국의 제재에 따른 막무가내식 지급 방침이 아닌 (보험사로서)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명분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감독당국은 제재에 따른 각 사의 보험금 지급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보험업법 기본 원칙에 따른 문제로 이를 지키지 않은 보험사에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법원 판례를 내세우는 3사 입장과 관련해선 "대법원 결정과는 별개 문제"라고 말했다.
◆지주사 전환 등 앞둔 3사, 당국 압박 부담
감독당국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에 영업정지(영업권 반납), 보험업종 등록 취소, CEO 해임권고 등 초강력 제재를 예고한 바 있다. 당장 금융지주사 전환, 인수합병(M&A)에 따른 대주주 적격성 심사, 주식시장 상장(IPO) 등을 계획하던 생보사들로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실제 ING생명과 KDB생명 등은 매각을 앞둔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하자 지난 6월 보험금 일괄지급을 결정한 바 있다. 3사와 함께 감독당국의 초강력 제재에 따른 입장을 8일까지 제출해야 했던 알리안츠생명 역시 중국 안방보험과의 M&A를 앞두고 지난 5일 이사회를 열어 소멸시효에 관계없이 자살보험금 122억원 가량을 전액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3사의 경우 삼성생명은 그룹 차원에서 금융지주사로의 전환을 내부 방침으로 세운 가운데 금감원의 제재를 받게 되면 자칫 지주사 설립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당장 삼성생명은 지주사 전환을 위한 삼성화재 지분 확대에 나선 바 금융당국의 승인이 필요한데 중징계가 내려지면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보생명은 그룹 오너이자 대표인 신창재 회장이 직접 경영을 맡고 있어 만일 금감원 제재에 따라 CEO 해임이 권고될 경우 업계 순위가 내려 앉을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자본 확충 작업을 위해 주식시장 상장을 포함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금감원의 중징계가 있을 경우 상장 작업에 차질이 생길 거란 전망이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8일 각 사의 보험금 미지급 관련 의견서를 받고 이를 토대로 제재심의위원회에 제재를 의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결된 제재안은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실제 제재로써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지난 5월 권순찬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기자실에서 자살보험금 지급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금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