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내적으론 지난 9일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따른 금융환경 불확실성 증대로 한은이 금리를 인하해 불안요소를 잠재워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반면 대외적으론 한은 금통위에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13~1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우리나라도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오는 15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연내 마지막 본회의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번 금통위에서 현재의 기준금리(연 1.25%)를 유지(동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은이 당분간 금리를 현 수준(연 1.25%)으로 묶어두고 대내외 상황을 관망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11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이달 미 FOMC에서는 0.25~0.50%인 정책금리를 1년 만에 올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이달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내년에도 세 차례 정도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내년에는 미 트럼프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재정확대 정책이 본격화되면 미 연준(Fed)의 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美 금리 인상으로 자본 유출 확대 우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0.25~0.50% 수준이다. 연준이 내년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세 차례 인상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연 1.25%)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 이 경우 내외 금리차가 축소되면서 국내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갈 수 있다. 외인 자본 유출 확대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그동안 기준금리 하한에서 자본유출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며 "국내 금리가 기축통화국 금리보다 높아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해 왔다.
그렇다고 한은이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인상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에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올 들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급증세를 기록하고 있는 국내 가계부채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국내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현실에서 금리를 인상할 경우 자영업자 등 금융 취약계층의 타격이 커 한국경제의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금리를 인하하자니 가계부채 증가세를 더욱 부추길 개연성도 크다.
이에 따라 한 금통위원은 지난 11월 금통위 회의에서 "향후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며 "미 대선과 국내 가계부채 등 한국경제의 성장세에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퇴양난' 한국경제 현실에…"금리 조정 힘들어"
'최순실 게이트'로 말미암은 탄핵 정국 등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은 현 한국경제의 하방 리스크를 부추기고 있다. 가뜩이나 수출과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한국경제에 정치적 혼란까지 가중되면서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일각에선 지난 19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고 평가한다.
이에 더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개별연구원(KDI) 등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내수 위축에 따른 성장 절벽을 우려하며 한은에 통화 완화책을 통한 선제적인 대응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각 기관은 이달 들어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을 일제히 낮춘(OECD 3.0%→2.6%, KDI 2.7%→2.4%) 바 있다.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유례 없는 3년 연속 2%대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금리를 조정할 타이밍이 아니다"며 "미국의 정책 경로와 국내 정치 이슈 등 안개 속에 갇힌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한은으로선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지난 10일 오전 박 대통령 탄핵 가결 다음날 간부회의를 열고 "최근 국내 정치상황 뿐만 아니라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통화금융대책반의 비상근무체제 하에 금융·외환시장 상황 변화 등을 계속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탄핵 국면이 어떻게 흘러갈 지 알 수 없다"며 "정책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은으로선 당분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