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채 발행 규모 자료=HMC투자증권,(신종자본증권 불포함)
KEB하나은행은 지난 달 2000억원 규모의 10년 만기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 발행에 나섰다가 마음을 바꿨다. 고심끝에 내년으로 미루자는 결론을 내렸다.
업계 관계자는 "당초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사전 청약)을 한 뒤 금리 등 발행 조건을 확정할 예정이었지만 금리가 급작스레 올라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은행이 코코본드 발행 때 금리 산정의 기준으로 삼는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9일 이후 사흘간 연 1.671%에서 1.937%로 0.267%포인트 상승했다. 10월 말 이사회를 통해 5000억원 코코본드 발행 한도를 승인했던 산업은행도 연내 발행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
시중은행들이 '2015년 말의 단기 자금 이슈의 트라우마'가 재연될까 걱정이다. 지난 11월 미국 대선 이후 시장 금리가 급등하면서 채권시장에 난기류가 흐르고 있는데다 연말엔 가계·기업들의 자금 수요까지 겹치는 시기 이기 때문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은행채 발행규는 68조원으로 집계된다.
만기는 57조원으로 10조원 가량의 순발행을 기록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최근 금리가 상승하는 추세인데다 채권 발행시기가 몰리다보니 체감적으로 많다는 느낌이 있는 듯하다. 다만 연말은 시기적으로 기업대출이 늘어나는 만큼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기업들의 자금수요는 늘고 있지만, 증가세는 지난해보다 낮다.
한국은행의 '2016년 3분기 중 예금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을 보면 지난 9월 말 현재 산업대출 잔액은 986조4000억원으로 6월 말보다 15조7000억원(1.6%) 늘었다. 3분기 증가액은 올해 2분기(11조6000억원)보다 4조1000억원 늘었지만, 작년 3분기(20조원)와 비교하면 4조3000억원 감소했다.
기업은 연말이나 반기 말에 부채 비율 관리를 강화하기 때문에 보통 연초·말에 자금 수요가 늘어난다. 최영엽 한은 금융통계팀 부국장은 "산업대출 증가액이 작년 동기보다 줄어든 것은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체 산업대출 중 예금은행의 산업대출 잔액은 810조3000억원으로 3분기에 10조원(1.2%) 늘었다. 증가액이 작년 3분기(16조4000억원)보다 6조4000억원 줄었다.
최 부국장은 "은행들이 구조조정의 영향을 받는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심사도 강화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3분기 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1295조8000억원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2년 4분기 이래 잔액기준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여기에 10월 중 은행 가계대출 잔액 증가세를 감안하면 10월 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1300조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연말에 자금을 맞춰야하는 이슈가 있지만, 작년과는 다르다"면서 "10월까지 가계대출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11·3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이어 11·24 가계부채 대책으로 대출은 점진적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대출이 줄어드는 시점에 은행들이 단기나 장기자금 조달에 나설 이유는 크지 않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은행들의 단기 자금 조달 비용(금리 상승)이 당분간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내년 초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2.1%대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더 오르면 자금 조달 계획을 철회하거나 연기하는 곳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10월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지난달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연 3.08%로 전월 대비 0.05%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리는 지난 1월 3.28%를 기점으로 꾸준히 하락해 7월에는 3% 밑으로 내려갔다. 이후 정부의 가계빚 총량 관리와 시중은행의 대출심사 강화 등이 맞물리면서 9월 상승세로 전환했고,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옥죄기가 지속되면서 두달 연속 대출금리가 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가 오리면 대출수요 줄어들 여지가 커진다.
또 내년에는 은행들의 자금조달 규모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있다.
HMC투자증권 박진연 연구원은 "11.3 부동산 대책 등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2015~2016년 급증했던 신규 분양 물량이 2017년에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세는 완화될 전망. 은행의 대출심리 또한 저하되고 있어 2017년 은행채 순발행은 감소할 전망이다"고 말했다. 이어 "대손준비금의 자본 인정도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의 발행을 감소시키는 요인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7년 은행채 만기는 76조원 가량이다.
김문호기자 kmh@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