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더 힘겨워질 전망이다. 기업 구조조정 등 악재가 쌓여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금융권 심사는 더 깐깐해지고, 웃돈을 준다해도 선뜻 돈을 빌려주겠다는 금융기관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차입도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발행금리 상승이 예상된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금융협회(IIF) 등이 잇따라 신흥국의 '레버리지(차입투자)'를 경고하고 있어 수요는 더 위축될 전망이다.
빚을 내고 싶어도 더이상 늘리기 어려운 '부채 절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웃돈 줘도 돈빌리기 힘들어 질수도
11일 투자금융(IB) 업계에 따르면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7년 전체 회사채 만기는 올해 보다 3조원 늘어난 43조원 가량이다. 이는 공사채, 은행채, 여전채 등 전체 크레딧 만기 225조원의 19.11% 규모다.
눈여겨 볼 대목은 취약기업으로 분류하는 A급 회사채 만기가 10조 8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보다 41.0%나 늘어난 금액이다.
BBB급 이하 회사채도 올해보다 0.1% 늘어난 3조 1000억원 규모의 만기가 예정돼 있다.
상대적으로 우량 등급에 속한 AA급 이상 회사채 만기는 23조7000억원이다. 올해 만기액보다 6.9% 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제때 자금을 조달하거나 빚을 갚을 지는 의문이다.
노무라는 미국의 금리 인상을 잠재적인 불안요인으로 규정하고 "한국 등 다수 아시아 신흥국들의 정책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에 가까워 앞으로 금리 인상의 동조화 압력이 금융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앞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위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부채부담의 완화와 생산성 향상 등 개혁이 필요하다"며 과도한 신용 증가에 따른 비효율적 자원 배분과 낮은 생산성을 성장률의 정체 요인으로 꼽았다.
기업들도 걱정이 앞선다. 회사채 투자심리가 냉각되면서 회사채 가산금리(국고채와 회사채의 금리 차)가 오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웃돈을 주고 돈을 빌려쓸 처지에 놓였다는 얘기다.
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주춤하고 있는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회사채 투자심리도 악화할 수 있다. 문제 기업들은 차환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
문창호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저성장 기조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작년과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인수·합병(M&A), 구조조정 등으로 사업재편에 따른 신용도의 리밸런싱(재조정)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내년 건설·조선·해운·철강·항공 등 5개 취약 업종의 만기액만 10조원에 달해 차환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룹별로는 이랜드·두산·한진·현대중공업·동국제강·금호아시아나 등 6개 그룹이 그간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며 "내년은 이들 그룹의 신용도가 좌우될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도 마찬가지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은행들이 발행한 코코본드는 4조원 가량이다. 상반기에는 전액 후순위채권(Tier2)이었으나, 하반기 들어 신종자본증권(Tier1) 발행(기업은행 6000억원)이 다시 시작됐다.
국내 은행들이 코코본드 발행을 서두르는 것은 국제결제은행(BIS)의 강화된 자본 규제인 '바젤Ⅲ'의 도입으로 자본 확충이 발등에 불이 됐기 때문이다. 오는 2019년까지 BIS 자기자본비율을 14% 이상 끌어올려야 하는데 6월 말 현재 우리은행(13.67%), 기업은행(12.56%) 등 일부 은행은 이 기준을 밑돈다. 또 바젤Ⅱ 규제에 따라 발행된 코코본드는 매년 자기자본에서 10%씩 차감된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은행들이 부실채권 증가에 대비해 자본 비율을 선제적으로 높여야 할 요인도 생겼다.
금융권에서는 각 은행이 현재의 자기자본비율(2016년 1분기 기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2022년까지 추가 발행이 필요한 코코본드의 규모는 연 평균 약 8조2000억원(후순위채권 5조6000억원, 신종자본증권 2조6000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양원근 한국금융연구원 비상임연구위원은 "경상수지 흑자 등을 통해 국내로 유입된 달러화의 상당부분이 외환보유액으로 쌓여 국내 은행의 외화예금 조달 여건은 취약하다"며 "국내 은행들 역시 최근 20년간 외화예금보다 조달의 안정성과 금리 경쟁력이 떨어지는 외화차입에만 상당 부분 의존했다"고 지적한다.
◆ 레버리지(차입투자)는 금융 안정 리스크 요인
그동안 기업들의 레버리지(차입투자)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적잖았다.
나선 시닷트 티와리 IMF 전략·정책리뷰국 국장은 "통상 급속한 신용팽창기(credit boom) 이후 세 번에 한 번꼴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면서 "민간 부문에서 발생한 레버리지가 급속한 파급효과를 보이며 공공 부문 재무건전성까지 악화시킨 전례가 있다"고 염려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한국은행과 IMF가 공동 주최로 연 '아시아의 레버리지:과거로부터의 교훈, 새로운 리스크 및 대응 과제'라는 주제의 국제 콘퍼런스에서 나온 것이다.
1300조원대 가계 부채와 한계기업으로 대표되는 기업부채 건전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도 미국 금리 인상발 위기에서 예외가 아닌 셈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이 컨퍼런스에서 "금융회사는 돈을 빌려줄 때 차입자 심사기능을 강화해서 레버리지의 양적 질적 개선을 꾀해야 하고 돈을 빌려쓰는 기업이나 가계는 미래의 소득 흐름과 금리변동과 관련한 위험, 자산과 부채간 만기불일치 위험 등을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