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로봇 자동화,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에 아직까지는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EY가 최근 실시한 '2016 글로벌 기업 공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재무제표 등 공시(Corporate reporting)를 위해 향후 2년 내 어느 분야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겠냐"는 질문에 대해, '로봇 자동화 또는 인공지능(Robotic Process Automation, Artificial Intelligence)'과 '블록체인(Blockchain)'을 선택한 국내 기업은 전체 응답자의 각각 10%로 조사됐다. 전체 항목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반면, 글로벌 기업의 경우, 응답자의 17%가 로봇자동화 또는 인공지능에, 16%가 블록체인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답해 한국 기업보다 이같은 분야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의 대다수는 데이터 인프라스트럭쳐(Data Infrastructure, 35%)와 빅데이터(Big Data, 33%)를 우선적인 투자 대상으로 꼽아, 특정 분야에 대한 투자 '쏠림 현상'이 두드러 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이같은 분야를 선택한 응답자는 각각 28%와 30%를 기록했다.
기업 공시 관련 신기술 투자 규모 전망에서도 한국 기업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2년 내 기업 공시 부문에 기술 관련 투자 규모가 얼마나 증가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글로벌 기업의 9%가 '20% 이상 증가한다'라고 답한 반면, 이같이 응답한 국내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왔다.
전 세계 29%의 기업들이 기술 관련 투자가 '향후 2년 내 11%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 반면, 이같이 응답한 한국 기업의 비중은 10%에 그쳤다.
EY는 기업의 투명성과 정보 접근성을 강조하는 정보 공개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4차산업 관련 신기술이 기업 공시 부문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고 풀이했다.
최근 기업들에 요구되는 정보 공개의 수준이 높아지고,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이 로봇자동화나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같은 신기술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제이피모건(J.P. Morgan), 바클레이스(Barclays), 메릴린치(Merrill Lynch) 등 세계 유수 금융사들은 이미 로봇자동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EY한영 금융사업본부(FSO) 이건영 파트너는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로봇자동화 시스템을 앞다퉈 도입해 단순·반복적인 '잡무'에 낭비되던 인력을 보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부문에 투입하고 있다"며 "비용 절감 뿐만아니라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와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어 각광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4차산업 혁명의 물결이 이제는 로봇자동화와 블록체인 등에 옮겨 붙을 때"라고 덧붙였다.
EY한영 금융사업본부(FSO) 김영석 파트너는 "빅데이터는 한국에서 수용 단계에 있는 반면, 클라우드 컴퓨팅, 로봇자동화, 블록체인 등은 여전히 학습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며 "이미 적용 단계에 들어선 해외와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규제(클라우드 컴퓨팅), 노동경직성(로봇자동화) 등이 4차산업의 진화 속도를 늦추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EY한영 감사본부 재무회계자문서비스(FAAS)팀 전상훈 전무는 "글로벌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과 관련 상당 수준의 진도가 나가 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 트렌드변화에 민첩하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은 신기술의 도입은 CFO의 위상이 기업 의사결정 파트너로 진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는 기업 공시 환경 변화에 대한 기업의 인식과 대응방안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25개국 1,000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대상으로 실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