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이후 금리가 급등으로 채권값이 곤두박질 치면서 채권투자자들을 울렸다. 미국이 내년 세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신흥국 경기 불안까지 겹치면서 증권사들은 4분기 실적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18일 자산 기준 상위인 NH투자·삼성·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미래에셋·신한금융투자·현대·대신·메리츠·하나금융투자·키움 등 11개 증권사가 보유한 채권 규모는 11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증권사는 적게는 7조∼8조원, 많게는 15조∼20조원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보유 채권값 하락으로 증권사 채권 트레이더들의 한숨이 늘어가고 있다.
증권가 한 트레이더는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채권 금리가 폭등(채권 가격 하락)해서 손실이 막대한 상황이다. 채권 가격이 오르리라고 생각해서 채권을 많이 사둔 증권사일수록 손실이 커서, 미 대선 후 한 주 사이에만 수 백 억원을 잃은 증권사가 여럿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금리 상승세가 쉽게 꺾일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국고채 3년물 금리는 11월 중 1.81%까지 치솟았다. 지난 6월 말 1.25%보다 50bp(1bp=0.01%포인트)이상 오른 셈이다.
증권가는 2013년 '버냉키 쇼크'의 트라우마에 빠졌다. 당시 연간 1조원 상당의 채권 손실이 발생했다.
한국신용평가 안지은 연구원은 "'버냉키 쇼크'와 유사한 금리 변동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증권사 보유채권은 이 때보다 30~40% 늘어난 상태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들은 13조원, 자기자본 5000억원 이상 소형사는 1조원이 금리 변동에 노출됐다"고 걱정했다.
나이스신용평가 홍준표 연구원은 "증권사의 경우 총자산의 약 50%를 채권으로 운용하고 있어 이러한 금리환경이 지속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평가손실로 인해 채권운용 부문에서 실적저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국고채 3년물 기준 시장금리가 현재 1.7% 수준에서 2.2%로 0.5%포인트 상승할 시 증권사는 7000억원의 채권평가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3분기 증권사가 벌어들인 전체 순이익 5700억원을 전부 까먹을 수 있는 규모의 손실이다.
증권사마다 파생상품을 활용해 '금리 변동에 따른 채권가격 변동폭(듀레이션)'을 적절히 조절하고 있지만 완전한 손실 회피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증권사별 전략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듀레이션을 0.5(금리 1%포인트 변동 시 보유 채권가격 0.5% 변동) 정도로 관리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증권사 채권운용팀은 밥그릇을 내놔야 할 처지다.
한 증권사 채권운용본부장은 "무리하게 채권 비중을 늘린 증권사들은 4분기에 적자가 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사 CEO 간담회에서 국내 증권업계의 핵심리스크 요인으로 금리 상승에 따른 보유채권 손실위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우발채무 현실화, 주가연계증권(ELS) 쏠림현상 등을 지적했다.
진 원장은 "9월 말 기준 증권사 총자산 392조원의 절반에 가까운 187조원의 채권보유액이 금리상승에 따른 손실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채무보증금액 중 부동산 관련 금액은 전체의 67%인 15조6천억원으로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면 우발채무의 현실화 우려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