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이후 미국의 달러화 지수 추이 자료=KB투자증권
'기러기 아빠'인 은행원 이모 씨(51). 그의 아내와 초등학생·중학생 자녀는 미국 시카고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각) 그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렸다.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기로 한 것. 한숨이 절로 나왔다. 미국에 유학 중인 가족의 집세와 생활비로 매달 3000달러 안팎을 보내야 하는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치솟던 달러 값이 금리 인상 후 더 오를 일만 남았다는 판단에서다. 이 씨는 "아이들에게 돌아오라고 할 수도 없어서 한국 쪽 비용을 더 줄여야겠다"며 걱정하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한국경제에 미칠 효과와 주체들의 셈법이 복잡해 졌다.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 가능성이 커지면서 부담이 커진 '기러기 아빠'들과 해외여행객들은 주름살이 늘게 됐다.
세계적인 수요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수출기업들은 앞으로 환율이 올라 가격경쟁력이 좋아지지 않을까 내심 반기는 눈치다. 다만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면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여 경영 전략을 짜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리 생활자와 충분히 금리 수준이 낮다고 판단해 고정금리로 갈아탄 이들은 금리에 속앓이 하고 있다. 서민들의 재산 불리기도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은행들의 살림살이도 더 팍팍해지고 있다.
◆기러기아빠 울쌍 vs. 수출기업 경쟁력 기대
증권사에 다니는 박모 씨(45)는 올여름 기러기 아빠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큰마음 먹고 미주 지역으로 가족여행 겸 아이들 어학연수를 떠날 예정이었다. 1년 전부터 돈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자 환율이 걱정이다. 조만간 자신이 남을 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박씨가 여행을 계획한 지난 8월 초 만(8월 10일 1095.4원) 해도 원·달러 환율이 1000원선을 위협받았다. 지금은 100원 가까이 오른 상태다.
겨울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해외여행객들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해외에 나가서 같은 양의 달러를 써도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만큼 원화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직장인 최모 씨(35·서울 마포구 상암동).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겨울 휴가를 계획 중이었다. 지금 계획을 짰다가 2달 후에 환율이 오를까 걱정이다. 항공료나 숙박비 등 기본적인 경비야 고정비로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현지에서 먹고 마시는 비용과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어서다. 최씨는 "기뻐하는 여자친구를 생각하면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보다 5.4원 오른 1183.9원에 마감했다. 금리에 대한 우려에 경기부양 및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의 무게가 더 실린 덕분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한·미간 통화정책의 디커플링 가능성이 적잖아서다. 한국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리고, 미국이 추가로 금리를 더 올린다면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겨 환율은 오르고, 주가는 곤두박질 가능성도 있다.
◆서민 목돈 만들기는 '그림의 떡'
은퇴 후 은행 예금 이자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자생활자들도 걱정이다. 1억원을 넣어두면 한달에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채 20만원이 안된다.
조만간 0%대 정기예금도 일반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행의 '2016년 10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를 보면 지난달 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는 1.41%로 한 달 새 0.06%포인트 올랐다. 정기예금 금리는 1.39%로 0.06%포인트 올랐지만 정기적금(1.53%) 금리는 0.07%포인트, 주택부금(1.82%) 금리는 0.03%포인트 내렸다.
서민들의 재산 형성도 막막해졌다. 통장에 넣어봤자 세금을 떼고,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손해 보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선 3%대 1년 만기 적금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미래가 더 불안하다. 한국경제가 벼랑끝에 몰리면서 한국은행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내외 여건 변화가 국내 소비자물가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내어,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 초반(1.1~1.4%)을 기록하여 여전히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인 2%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 통화정책은 (현재의) 완화적인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필요한 경우 경기와 물가 하방압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대출자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의 '10월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지난 10월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연 3.08%로 전월 대비 0.05%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리는 지난 1월 3.28%를 기점으로 꾸준히 하락해 7월에는 3% 밑으로 내려갔다. 이후 정부의 가계빚 총량 관리와 시중은행의 대출심사 강화 등이 맞물리면서 9월 상승세로 전환했고,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옥죄기가 지속되면서 두달 연속 대출금리가 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근간이 되는 신규 코픽스 금리가 지난 9월부터 석 달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9월 0.04%포인트, 10월 0.06%포인트, 11월 0.1%포인트 등 석 달간 0.2%포인트가 올랐다. 우려되는 대목은 매월 오름 폭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예금자, 금리 오르니 반갑네
반면 금리 인상이 반가운 이들도 많다.
달러 예금에 투자한 사람들은 환차익을 거둘 수 있어 즐거운 비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1월 달러화 예금 잔액은 520억3000만 달러로 한 달 사이 7억1000만 달러 줄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개인의 달러화 예금이 줄어든 데 대해 "환차익을 보려는 예금인출이나 유학자금을 비롯한 실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달러 예금에 돈을 넣은 사람들은 돈을 넣고 뺄때 각각 물어야 하는 환전 수수료를 내고도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수출기업들은 보통 환율이 오르면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좋아져서 매출이 늘어나는 것이 상식이다. 실제 원·달러 환율이 100원 가량 오르면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은 8000억원 안팎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와 기아차도 각각 연간 1조2000억원, 1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신흥국 경제가 위축돼 우리나라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특히 잇따른 정책 효과까지 반감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