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면세점 입찰에서 세 번이나 떨어지고도 로비 의혹을 계속 받자 울상을 짓고 있다.
SK는 지난해 7월 실시된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사업자 선정 입찰(1차 입찰)에서 탈락했다. 지난해 11월 면세점 특허 재연장(2차 입찰)에도 실패해 23년간 자리를 지켜온 SK 워커힐면세점이 퇴출됐다. SK그룹은 절치부심하고 '3수'에 나섰지만 지난 17일 발표된 입찰에서도 탈락하고 말았다.
면세점 입찰에서 세번이나 떨어진 곳은 SK가 유일하지만, SK는 면세점 악몽을 계속 겪고 있다. 지난달 24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데 이어 특검 수사도 앞두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세점 로비를 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면세점 로비하고도 '3연탈'은 앞뒤 안 맞아
19일 재계에 따르면 SK는 면세점 사업 연장을 위해 대통령에게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장 최근 의혹은 지난 2월 16일 박 대통령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면담할 때 준비한 '말씀자료'에 근거를 둔다. 이 자료에는 "정부가 면세점 산업의 육성 등을 위해 시내 면세점 특허 제도에 관한 종합적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답변이 등장한다. SK그룹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기부를 하며 면세점 사업권을 대가로 얻는 것 아니었냐는 의혹이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가 준비한 '말씀자료'는 대기업 오너와 독대하며 대통령에게 해당 기업의 현황을 알려주는 통상적인 자료다. 지난해 말부터 면세점 제도개선 움직임이 있어왔기에 두 번이나 면세점 선정에 탈락한 SK그룹을 위로하는 '립서비스' 수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해 11월 면세점 2차 심사에서 롯데와 SK가 탈락한 이후 ▲탈락업체의 직원 고용과 재고처리 문제 ▲면세사업 지속성 단절과 경쟁력 약화 등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기획재정부 등의 주도로 범정부 차원의 개선책이 논의된 바 있다.
관세청도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관세청은 "추가특허를 포함한 면세점 특허제도 개선은 지난해 9월부터 관련 태스크포스(TF)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돼 왔다"면서 "지난해 메르스 사태 등으로 인한 경기침체 지속, 면세점 특허상실에 따른 대량실업 우려 등으로 추가 특허가 최종 결정된 것"이라고 로비 가능성을 일축했다.
최 회장과 박 대통령 면담 보름 후 K스포츠는 SK에 80억원의 자금을 요청한다. 면세점 청탁이 이뤄졌다면 거부할 수 없는 요청이었지만 SK는 이를 거절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도 대가성 보기 어려워
SK그룹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111억원을 기부했다. 일각에서 이를 면세점 사업권을 얻기 위한 청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보기에는 시기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견해다.
SK그룹은 미르재단에 기금 출연을 약정하고 11월 17일 기부금 출연을 시작했다. 이 사이에 면세점 2차 심사 발표가 있었다. SK의 출연이 청탁이었다면 기부금 출연을 대가로 면세점 선정을 약속한 뒤, 심사에서 탈락하고 돈을 전달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내고 2차 입찰에 선장된 기업들의 로비 의혹을 밝히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면세점 제도개선 방안에 포함됐다가 6월 삭제된 시장지배적 사업자 감점 조항도 SK그룹의 의혹을 덜어준다. 면세점 업계 약자들의 시장 진입을 돕기 위해 시장지배력이 높은 기업에 감점을 주는 이 제도는 약체로 분류되는 SK그룹에게 꼭 필요한 조항이었다. 그러나 관세청이 지난 6월 3일 시내면세점 신규특허를 공고할 때 이 조항을 삭제해 SK는 3회 연속 탈락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4대 그룹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은 매출액에 맞춘 준조세 자금인 것이 이미 드러났다. 비율 역시 '삼성 2.0 : 현대차 1.2 : SK 1.0 : LG 0.8'로 맞춰졌다.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 파장이 큰 만큼 다양한 의혹이 생길 수 있지만 이미 정권에게 현금인출기 취급을 받은 기업들이 무분별한 의혹까지 제기받아 2차 피해를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