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침체와 미국발 금리 인상 여파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의 충격이 국내 자본시장을 덮치자 기업공개(IPO) 시장과 채권 발행 시장도 다시 급랭하고 있다.
상장을 준비하던 일부 기업은 벌써부터 시장 침체·기업가치 저평가를 걱정하며 IPO 연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올해 IPO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은 기업은 70여곳이 겨우 넘는다. IPO를 미룬 대어급 기업들은 내년 IPO 일정을 잡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의 직접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한국거래소가 상장 심사 기준을 완화하며 IPO시장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잇따른 '돌발변수' 등장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쪼그라든 IPO시장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시장에서 13개, 코스닥시장에서 59개(스팩 제외) 기업의 상장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연초 한국거래소가 밝혔던 수준(유가증권시장에서 25개, 코스닥시장에서 140개)의 절반에 불과하다.
물론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2조 2000억원)와 두산밥캣이 상장하면서 총 공모금액은 현재까지 6조원에 육박(5조9588억원)한다. 지난해 공모금액인 4조5230억원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효과'를 빼면 오히려 시장 위축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올해 IPO시장 침체는 경기침체와 부진한 수익률이 한몫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시장 상황이 안 좋아 상장을 준비하던 기업들이 상장을 아예 철회하거나 상장 시기를 늦추는 등 관망세를 보였다는 얘기다. 지난해 새로 상장된 기업들의 공모가 대비 평균 수익률은 18.34%에 달한다. 4년 평균도 18~39%이다.반면 올해 신규 상장사들의 공모가 대비 평균 수익률은 -0.8%다.
BNK투자증권 최종경 연구원은 "과거 4년간 IPO시장은 18~39%의 주가수익률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높은 공모가로 상장한 신규상장 기업들이 상장 직후 주가 고점 형성 후 주가 하락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내년 IPO 시장 전망도 낙관할 수 없다. 호텔롯데, 넷마블게임즈 등이 IPO를 준비중이지만 시장이 위축돼 있어 실제 상장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업들, 회사채 시장서 찬밥
회사채 시장도 얼어붙었다. 특히 A급 이하 기업들이나 건설·조선·해운·철강 등 '취약 업종' 기업들은 자금난에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미래 투자를 미루고 내부 현금을 동원해 만기를 넘기는 쪽으로 선회하기도 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2월 초 현재 국내 기업은 2조5977억원어치 회사채를 순상환했다. 2014년(9772억원어치) 이후 2년 만의 순상환이다.
시장에서는 기업의 회사채 순상환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7년 전체 회사채 만기는 올해 보다 3조원 늘어난 43조원 가량이다. 이는 공사채 은행채, 여전채 등 전체 크레딧 만기 225조원의 19.11% 규모다.
눈여겨 볼 대목은 취약기업으로 분류하는 A급 회사채 만기가 10조 8000억원에 달한다. 올해보다 41.0%나 늘어난 금액이다.
BBB급 이하 회사채도 올해보다 0.1% 늘어난 3조 1000억원 규모의 만기가 예정돼 있다.
상대적으로 우량 등급에 속한 AA급 이상 회사채 만기는 23조7000억원이다. 올해 만기액보다 6.9% 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크레딧 시장 한 관계자는 "2012년 웅진 사태 이후 지속돼 온 신용등급 조정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A등급에 대한 투자심리가 빠르게 회복되긴 어려워 보인다"면서 "하지만 A등급의 체질 개선과 함께 최근 펼쳐지고 있는 시장 상황은 A등급이 살아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수급도 좋지 않다. 기관들이 회사채 투자를 꺼려서다.
IB업계에 따르면 3·4분기 현재 기금, 보험, 투신, 은행 등 주요 기관들의 주요 채권 투자 잔액은 1042조원 규모다. 지난 2011년 772조원에 비해 35.1%나 늘었다.
회사채 보다는 국채와 금융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들 기관의 국고통안채 투자 금액은 2009년 초 53조6000억원에서 186조8000억원까지 불었다. 공사채 투자 금액도 33조7000억원에서 130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연기금은 잔액 중 국고통안채 비중이 50.7%로 가장 많다. 공사채와 금융채가 각각 24.1%, 13.3%이다. 나머지 11.9%가 회사채다.
보험권도 운용자산의 46.1%를 국고통안채에 쏟아붙고 있다. 회사채 비중은 7.2%로 가장 낮다.
연기금과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은 국내 채권 이외에 국내외 대체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