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큰 목표를 가져라, 철저하게 습득하고 지시하고 확인하라, 항상 생각하고 연구해서 신념을 가져라."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던 1980년대 초부터 회자되어 온 '삼성전자 반도체인의 신조' 중 일부다.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직원들은 아침마다 이를 복창하고 근무에 들어갔다. 현재의 권오현 부회장과 김기남 사장, 전동수 사장 등이 해당된다.
◆반도체서 시작된 R&D DNA… 전 사업부로 확산
시계, TV 등에 들어가는 단순한 칩을 생산하던 삼성전자는 1983년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마치 자전거를 만드는 철공소에서 초음속 항공기를 만들어내라고 하는 수준의 주문'이라는 내부 직원들의 냉소적 평가를 이겨내고 삼성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1983년 1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직원 6명을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연수 보내고 연구개발(R&D)에 집중한 지 10개월 만인 그 해 11월에 이뤄낸 성과다.
이후 부단한 R&D 투자를 거듭한 삼성전자는 1992년을 기점으로 세계 D램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라섰고 R&D의 중요성은 전 사업부로 퍼져갔다.
최근 들어서는 특허 분쟁이 이어지며 R&D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화웨이와 특허 분쟁을 겪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 7월 특허를 침해당했다며 미국과 중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도 "화웨이가 특허를 침해했다"며 한국과 중국 법원에 소송을 내고 반격에 들어갔다.
화웨이의 특허 공격에 삼성전자가 강하게 맞대응할 수 있던 것은 그간 R&D 투자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1년부터 매년 10조원 넘는 금액을 R&D에 투입하고 있다. 2015년 삼성전자는 14조8488억원을 R&D에 사용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 정부 R&D 예산이 19조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세계적으로도 민간 기업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투자액이었다.
◆혁신 위한 R&D 노력은 '현재진행형'
삼성전자가 미래 핵심기술 개발을 위해 국내외에 설립한 연구소는 36개, 인력은 6만 명에 달한다. 전년도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도 5072개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R&D 조직은 개발팀-연구소-종합기술원이라는 3단계로 구성됐다. 각 사업부에 속한 개발팀은1~2년 내 시장에 선보일 기술의 상용화를 맡는다. 부문별 연구소는 3~5년 뒤 사용 가능한 유망 기술을 개발하며 종합기술원은 미래 성장 분야에 대한 방향 제시와 핵심 기술 선행개발을 담당하는 식이다.
삼성전자는 3단계 프로세스 단축에도 나섰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 있어 선행기술의 상용화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고 단계별 담당인력이 달라 혼선도 상당하다는 이유다. 최근 종합기술원 산하 연구기관을 모두 통합했고 반도체연구소, DMC연구소 등 사업부문별 연구소 일부도 내년 2분기까지 종합기술원으로 통합하는 안이 추진된다.
임직원들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2012년 시작된 C랩은 분야와 직급에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제안 받아 1년 동안 사업화를 지원한다.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1년 동안 현업 부서에서 벗어나 팀 구성과 예산 활용, 일정 관리 등을 자율적으로 수행한다. 삼성전자는 이들의 창업도 지원하며 사업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원하는 경우 삼성전자로의 복귀도 허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R&D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인수합병(M&A)도 활발히 추진됐다. 삼성전자는 올해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조이언트, 인공지능 플랫폼 업체 비브랩스, 전장부품·오디오 전문기업 하만, 차세대 문자메시지 기술 기업 뉴넷캐나다, 퀀텀닷 재료 기업 QD비전 등을 인수하며 공격적인 M&A에 나섰다. 삼성페이, 인공지능, 전장사업 등 이제껏 하지 않았던 사업을 확보하거나 기존 사업을 강화시키는 차원에서 추진된 M&A들이다. 처음부터 R&D를 시작하기보다 핵심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인수한 뒤 R&D를 더한다는 발상은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재계 관계자는 "M&A를 강화하더라도 R&D가 기업의 핵심역량 강화 필수 요소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며 "삼성전자는 매년 매출의 6~8%를 R&D에 투입하는 만큼 R&D와 M&A의 시너지를 잘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