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투게더(Joy Together)'.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집무실 앞 문패에 새겨진 말이다. '함께 즐겁게'라는 뜻으로 김 회장의 경영철학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조용한 2인자'에서 하나금융그룹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김 회장. 그에게도 2017년 한 해는 두렵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치, 경제, 사회, 기업, 가계 곳곳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와 판박이 처럼 닮아 있는 것.
하지만 김 회장은 환경 탓으로 돌리는 CEO가 아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 은행과 카드의 노조 통합 등 고비마다 발휘한 '뚝심 리더십'으로 하나금융그룹을 위기에서 구했다.
김 회장은 1일 신년사를 통해 "무한 경쟁시대에 승자는 손님이 직접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는 '오가닉 비즈니스' 기업이 될 것"이라며 "하나금융의 미래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가닉 비즈니스'(서울대학교 노상규, 2016)란 판매자나 유통자가 아닌 손님이 직접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 네트워크가 마치 생명체처럼 성장하고 진화하는 비즈니스를 말한다.
◆'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사라질 것이다'
김 회장을 두고 회사 안팎에서는 '형님 리더십'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친형과 같은 따뜻한 포용력과 세심함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 '형님 리더십'이란 별칭에 관해서는 같은 1952년생 용띠지만 자신보다 직급이 높았던 김종열 전 하나금융 사장에게 항상 '형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방 앞에 'Joy Together'라는 팻말을 붙인 이유는 뭘까. 누구에게나 열렸다는 취지에서다. 지위와 격식을 모두 내려놓고 임직원과 소통하겠다는 그의 경영철학이 함축돼 있다고 하나금융 측은 설명했다.
자신도 "직원들이 자유로운 환경과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2015년 9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물리적 결합으로 태어난 'KEB하나은행'. 1년여 만에 KEB하나은행을 '원뱅크' 로 만든 것도 김 회장의 열정과 뚝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익성과 건전성 지표도 좋아졌다. 3·4분기 연결기준 누적으로 1조2401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지난해 연간 순익(9097억원)을 3분기 만에 추월했다. 핵심 계열사인 KEB하나은행은 누적기준 1조260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02%로 2분기 말보다 0.15% 포인트 낮아져 건전성 지표도 개선됐다.
김 회장은 아직 배가 고프다.
그는 이날 임직원들에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내 외 정치, 경제 상황은 여리박빙(如履薄氷)과 같이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정국 불안, 기업구조조정 문제, 부동산 시장의 정체, 1300조원에 달하는 과도한 가계부채와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부담 가중 등으로 투자와 소비가 위축돼 국내 외 주요 기관들은 3년 연속 2%대의 저성장 국면을 예상하고 있다"며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달라질 미래 금융산업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10년 후 글로벌 금융회사에는 애플, 아마존, 구글,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등장한다. 빌 게이츠가 선언한 것처럼 '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사라질 것이다(Banking is necessary. Banks are not.)'라는 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면서 "유사한 금융상품을 갖고 가격 경쟁이나 프로모션으로 푸시(Push)하는 공급자 중심의 영업방식으로는 더 이상 스마트한 손님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금융이 아닌 타 업종과 무한 경쟁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소비자 중심과 '오가닉 비즈니스'에 미래 달려
하나금융그룹은 '하나멤버스'로 금융권 멤버스 서비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 '핀크(Finnq)'와 같은 생활금융플랫폼 개발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다.여기에 글로벌 컨소시엄 블록체인인 'R3 CEV'에도 국내 최초로 가입해 글로벌 핀테크 네트워크 환경도 구축 중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가지고 올 변화를 따라가려면 아직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김 회장은 "올 해 인터넷 전문은행이 출범해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하고, 금융권, 유통사, 통신사 등에서 20개가 넘는 페이서비스가 출시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승자는 손님이 직접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는 '오가닉 비즈니스' 기업이 될 것"이라며 "손님이 만든 네트워크가 마치 생명체처럼 성장하고 진화하는 비즈니스를 만드는 기업이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의 대표적인 기업인 레고(Lego)를 예로 들었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황금기를 누리던 레고는 지나친 외형 성장을 추구하면서 2004년 파산의 위기까지 몰렸다. 그러나 레고는 기업의 핵심가치인 '아이들을 잘 놀게 해 주기'에 집중하면서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특히 800만 회원을 향해 가는 '하나멤버스'를 오가닉 비즈니스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는 "하나멤버스도 이제는 손님이 스스로 홍보할 수 있도록 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서비스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면서 "이러한 그로스해킹 방식을 통해 하나멤버스도 플랫폼 경쟁을 뛰어넘어 '오가닉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객의 온라인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고객을 모으는 마케팅 기법인 '그로스해킹(growth hacking)'을 강조한 것.
이어 "올 해는 하나멤버스를 해외 주요 국가들과 제휴 연계해 포인트 교환을 통한 글로벌 멤버십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라며 "제품과 서비스는 복제하기 쉬우나 네트워크 그 자체는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는 고유한 가치다"고 말했다.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는 말로 임직원들에게 마음가짐과 생각의 변화도 주문했다. '해현경장'이란 중국 한나라 동중서(董仲舒)가 무제에게 올린 "현량대책"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거문고의 줄을 다시 매다'는 뜻이다.
김 회장은 "우리도 판(板)을 바꾸기 위해 기업문화와 영업방식에 있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면서 "그룹 차원의 원 컴퍼니(One Company)를 지향해 채널간의 연계를 강화하고, 상품개발 통합 플랫폼 구축에 주력하여 손님이 원하는 금융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룹 임직원은 단순히 금융상품을 성과평가지표(KPI)에 맞춰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상황에 맞춘 금융상담과 솔루션을 제안하는 컨설턴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모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흥'이 나서 영업을 할 수 있는 환경도 강조했다.
그는 "그룹 윤리헌장(Code One)을 실천하기 위한 핵심행동원칙(Core 7)을 준수하면서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기업문화로 판을 바꾸는 사고의 전환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그룹의 원동력이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 '손님의 기쁨, 그 하나를 위해'서는 협력쟁선(協力爭先)의 마음가짐을 통해 진정한 원 컴퍼니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면서 "모든 그룹사가 손님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만 손님들이 하나금융그룹을 찾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신뢰받고 앞서가는 글로벌 금융그룹의 면모를 진정으로 구현하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