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2월 17일 오후 제주시청 종합민원실 앞 도로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제주행동 주최로 박 대통령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제주지역 9차 촛불집회가 열렸다./뉴시스
<메트로신문>은 지난 2016년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다양한 직종의 시민 30여명에게 새해에 어떤 법안이 제정됐으면 좋겠는지 물어봤다.
시민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다사다난했던 2016년'이 자연스레 정리됐다.
특히 여느 때와 달리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이로 인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듯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권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법안들을 많이 제시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오모씨(38)는 "정치인들, 부자들, 심지어 그 자녀들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도 너무 쉽게 일상에 돌아간다"며 "우리나라 법은 사회 권력층에 너무 관대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씨는 최근 벌어진 '기내난동 사건'을 언급했다. 오씨는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린 사람은 중소기업 사장 아들이라던데, 그 사람 입장에서 벌금 1000만원이 어렵겠냐"며 "기사들을 보니 그 사람은 '상습범'이라더라. 벌이 약하단 의미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큰 돈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 돈 없어서 징역도 간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그는 '형평성'을 강조했다. 오씨는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들이 모두 '법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려면, 상황에 맞는 벌금 규정이 있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어려운 만큼 부자도 어려울 정도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땅콩회항' 사건을 비롯한 두 사건으로 인해 국회에서는 항공기 보안법에 대한 처벌 규정이 낮다는 문제제기 아래 '강화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각론'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오씨의 생각이다.
오씨가 주장하고 있는 법안은 핀란드·스웨덴·덴마크·독일·멕시코 등에서 채용하고 있는 '일수벌금제'다. 효과적인 징벌효과를 위해 우선 범행의 경중(輕重)에 따라 일수를 정하고, 이후 피고인의 재산 정도를 기준으로 산정한 금액에 일정 비율을 곱해 최종 벌금액수를 정하는 방식이다. 이 법안이 발의될 경우 '역차별'이란 반발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땅에 떨어진 우리사회의 '법치'를 살리기 위해서 강력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울 관악구에 살고 있는 전업주부 주모씨(42)는 기업들의 '안전불감증'·'무책임'을 지적하며, 동시에 정부의 '느슨한 관리'도 비판했다. 주씨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도 그렇고, 휴대폰 폭발 때도 그렇고. 정말 철렁했다. 어른들은 그렇다쳐도 아이들에게 잘 해주려다 평생 죄책감에 살 수도 있지 않느냐"며 "외국에 보면 이런 사건이 생길 경우 다시 못 일어나게 해서 안전에 대해 특히 조심하게 한다던데, 그런 법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씨가 언급한 법안은 영국·미국·캐나다·호주 등에서 실시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이 법안은 기업이 불법행위를 통해 영리적 이익을 얻은 경우 이익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손해배상액이나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방식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이중처벌'이라는 반대 의견과 '소비자 권리를 생각할 때'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편 올해 말 정국을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정 등의 영향으로 '정치개혁'과 관련한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특히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표 연령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2학년 이모군(18)은 "이번 정유라 입학 과정을 보고 솔직히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제대로 잠도 못자고 공부하나 싶었다"라며 "이렇게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피해보는 것도 있는데 우리가 배제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군은 "사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않느냐"면서, "나이가 어리지만 우리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제일 잘 안다. 교육제도에 우리의 목소리가 들어간다면 사교육 문제? 이런 것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성토했다.
반면 옆에서 이 이야기를 우연히 듣던 자영업자 양모씨(62)는 "그 나이에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러니 교육을 하는 거고 투표를 해도 더 배우고 하라는 것"이라며 "중·고등학교 때는 선생님 말이 '법'이지 않느냐. 요즘 선생님들 중에 선동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되고, 그래서 안 된다. 더 (나이를) 올려야 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 대한 '견제'를 강조하는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시민도 있었다. 택시기사 김모씨(51)는 "지금 정치인들 싹 바꿔야 나라가 바뀐다. 그런데 바꾸려고 하면 지역구(선거구)를 이상하게 바꾸고, 쪼개고. 이래서는 지금같은 이런 '사단'은 계속될 거다.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처럼 사람들이 촛불들고 나오는데도 안 물러나고, 조용히 있고, 정말 '이게 나라냐'는 말이 딱 정답"이라면서 "임기 중에도 내려오게 할 수 있는 법안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가 주장하는 법안은 스위스의 몇 개 주와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채택하고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 의원 등에게만 적용되고 있는'국민소환제'다. 유권자들이 부적격하다고 생각하는 선출직 정치인을 임기 전에 국민투표에 의하여 파면시키는 제도다. 국민소환제는 현재 야당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당사자인 정치인들의 '기득권 내려놓기' 성사여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