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업계가 사모투자펀드(PEF)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해 쌍용양회와 한라시멘트가 PEF에 인수된 뒤 올해에는 현대시멘트마저 PEF가 사들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쌍용양회 동해공장 전경.
국내 시멘트업계가 사모투자펀드(PEF)에 휘둘리고 있다.
업계로선 '치고 빠지기 식'의 사모펀드가 전혀 반갑지 않다. 건설과 부동산시장의 토대가 되면서 기간산업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시멘트산업을 사모펀드가 쥐락펴락할 경우 자칫 기업들의 펀더멘털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그 부담이 시멘트 수요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업계 1위인 쌍용양회공업을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가, 프랑스계 라파즈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한라시멘트를 역시 사모펀드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글랜우드PE)가 각각 인수한 바 있다. 한라시멘트는 업계 5위권이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매각을 위한 예비적격후보(숏리스트)를 확정한 현대시멘트가 내달 본입찰을 열고 새 주인을 확정지을 계획이다.
숏리스트에는 쌍용양회공업, 한라시멘트, 현대성우홀딩스, 유암코, IMM PE, LK투자파트너스-신한금융 등 7곳이 포함돼 현재 인수를 위한 실사가 진행중이다.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현대시멘트 인수도 사모펀드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수전에 뛰어든 쌍용양회나 한라시멘트 모두 주인은 사모펀드여서 현대성우홀딩스를 제외하면 숏리스트 후보군 대부분이 사모펀드다.
현대시멘트는 매출 비중으로 업계 7위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 예상이 적중할 경우 국내 시멘트 회사 가운데 1위(쌍용양회), 5위(한라시멘트), 7위(현대시멘트)를 모두 사모펀드가 품에 안게 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주인인 쌍용이나 한라의 경우 동해안 지역에 공장을 갖고 있는 해안사로 시너지효과 등을 감안해 내륙에 공장(단양·영월)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시멘트 인수전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특히 PEF 특성상 투자회사의 몸집을 불려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인수를 위해)상당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한앤컴퍼니가 현대시멘트(시장 점유율 7.4%)를 사들일 경우 쌍용양회(〃 28.8%)와 더불어 36.2%로 2위인 한일시멘트(21.2%)를 멀찌감치 따돌리게 된다. 글랜우드PE가 현대시멘트를 사들이면 한라시멘트(9.5%)와 함께 16.9%의 시장점유율로 3위권까지 치솟는다.
현대시멘트는 현대건설 시멘트사업부가 모태다. 고 정순영 성우그룹 회장은 형인 고 정주영 회장이 운영하던 현대건설에 근무하다 시멘트사업부를 갖고 나와 현대시멘트를 창업했다. 지금은 그룹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현대시멘트는 성우그룹의 기반이 된 회사다. 이번 현대시멘트 인수전에 현대성우홀딩스가 뛰어든 것도 이런 역사 때문이다. 현대성우홀딩스는 고 정순영 회장의 4남인 정몽용 회장이 자동차 부품제조업 등을 영위하며 그룹의 맥을 잇고 있는 회사다.
문제는 사모펀드가 인수할 경우 회사가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느냐다.
M&A 업계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의 가장 큰 목적은 인수한 물건을 빠른 시간에 비싼 값에 팔고 현금화하는 것"이라면서 "물론 이익을 꾸준히 내는 기업이라면 장기간 보유하며 시기별로 배당을 받는 것도 좋겠지만 경기 변동성이 심한 시멘트회사들 상황은 또 그렇지도 못하다"고 전했다.
한앤컴퍼니가 인수한 쌍용양회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조5000억원을 들여 쌍용양회를 사들인 한앤컴퍼니는 쌍용머티리얼 지분 52.1%를 800억원에 OCI 계열사인 유니온에 매각했다. 올해에는 쌍용에너텍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쌍용해운 하역사업부를 인수한 쌍용로지스틱스를 매각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양회 시가총액이 인수를 위해 들인 돈을 한참 밑돌고 있는 상황에서 돈 되는 계열사는 모두 팔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쌍용양회 일부 인원은 구조조정을 당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한앤컴퍼니가 쌍용양회 지분을 추가로 사들여 상장을 폐지시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앤컴퍼니는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의 사위인 한상원씨가 설립한 PEF다.
홍콩계 PEF인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와 손잡고 한라시멘트를 인수한 글랜우드 PE는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차남 이상호씨가 이끌고 있다. 지난해 3월 라파즈로부터 사들인 금액은 6300억원으로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