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전면 지정제는 불가…감사인 지정 사유 확대"
회계업계 "감사인 지정 요청할 수 있는 주체 범위 확대해야"
기업 "기존 자유선임제 선호"
감사인 지정제를 놓고 기업과 금융당국, 회계업계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기업들은 기존 '자유선임제'를 선호하지만 모뉴엘 사태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의혹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당국과 회계업계는 '감사인지정제'를 확대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방법론에서는 온도차가 있다.
금융위원회는 12일 '회계 투명성·신뢰성 제고방안'을 발표하면서 감사인 선임제도의 대폭 개편을 예고했다.
현행 감사인 선임제도는 기업이 자유롭게 감사인을 선임하는 '자유선임제'가 원칙이다. 기업이 감사인의 고객인 소위 '갑'이 되는 구조여서 기업이 입맛에 맞춰 감사인을 고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윤세리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는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열린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세미나 주제발표를 통해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은 단기간에 이뤄질 사안이 아니다.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감사인지정 제도 확대 등 당장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예외적으로 신규 상장회사나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한 회사 등에만 '지정감사제'가 적용된다. 현재 상장기업의 7~8% 가량이 감사인을 지정받고 있다.
금융위는 일단 감사인 전면 지정제는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전면 지정제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잘하고 있는 기업까지 감사인 지정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며 " 회계투명성에 우려가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정감사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회사 규모나 주주의 수로 볼 때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거나, 지배구조나 재무특성상 분식회계에 취약점이 있는 경우, 회계투명성 유의가 필요하다고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3가지 조건에 해당하면 감사인을 지정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다.
방법은 '선택지정제'가 유력하다. 일정 기간마다 외부감사인을 교체하면서 특정 감사인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계약 중인 회계법인이 아닌 나머지 감사인 중 한 곳을 고르는 방식이다.
반면 회계업계는 감사인 지정을 요청할 수 있는 주체의 범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현재는 관계기관의 장, 주채권은행 등에 한정됐지만 채권자, 신용평가사와 같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회계정보 이용자들도 감사인 지정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회계업계에선 감사보수 현실화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장은 "외부감사인과 피감법인의 관계를 고려할 때 현재의 자유선임제는 반드시 수정이 필요하다"며 "감사보수의 경우 기준이 없다 보니 위로 튈 지, 아래로 내려갈 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위는 이달 중으로 감사인 선임제도를 결정해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