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를 바란 지원인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강요에 의한 지원인가.
박영수 특검팀과 삼성그룹이 '대가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르·스포츠K 재단 등에 삼성이 자금지원을 한 것을 두고 특검은 '대가를 전제한 부정청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삼성은 '권력에 의한 강탈'이라 주장하는 상황이다.
특검은 삼성물산 합병 지원을 '부정한 청탁'으로 보고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 합병으로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으면서도 국민연금이 찬성해 이후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입었다는 것을 이유를 들고 있다.
◆부정한 청탁? 국민연금 '신의 한수' 합병찬성
15일 재계와 회계업계 등에 따르면 자본시장·회계전문가들은 삼성물산 합병 이후 국민연금이 되레 거액의 평가차익을 얻었다며 특검의 논리는 지나치게 자의적이라고 평가한다. 특정 계열사가 아니라 그룹전체의 시너지·미래의 기업가치 제고 여부가 투자의 포인트라는 것이다.
실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에 대한 투자로 지난해 3700억원(11월30일 기준·국민연금 자체 분석)의 평가손실을 입었지만, 삼성그룹 전체로는 6조원의 막대한 평가차익을 얻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7% 달하는 깜짝 수익률을 올리게 한 1등 공신이 삼성그룹인 것이다.
국민연금은 삼성그룹 계열 11개사에 5.02%(삼성엔지니어링)에서 9.75%(호텔신라)까지 총 28조2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삼성 포트폴리오에서 삼성물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9%에 불과하다. 여의도의 한 펀드매니저는 "투자는 포트폴리오가 핵심이다. 투자 바구니에 담기는 10개의 계란 중 2~3개가 깨져도 나머지 7~8개에서 이익을 보는게 투자"라고 말했다.
깨진 2~3개의 계란보다 10개의 계란을 담은 투자바구니가 이익을 실현했냐가 관건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그룹이 삼성물산 합병을 통한 사업재편과 지배구조 개선을 이룬 것이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불거진 CEO 리스크를 제거했고 기업가치 증대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당시에도 증권사들은 이 같은 이유를 들어 대부분 합병에 찬성했다.
회계학계와 회계업계도 '특정기간 특정 계열사(그룹 소속일 경우)의 단순 주가 비교' 만으로 손실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법적인 실체(개별기업)를 떠나 실제적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기업집단의 회계자료가 더욱 유용하다는 설명이다. 국내외에서 개별회사보다 연결재무제표나 그룹재무제표를 핵심 회계자료로 삼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위원회도 기업집단별 그룹재무제표나 연결재무제표로 사업보고서를 공시토록 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으로 손실을 입었는지는 개별회사뿐 아니라 기업집단 단위나 지분보유 계열사를 묶어 판단해야 정확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형회계법인 A사의 부대표는 "IFRS(국제회계기준)를 도입한 것은 글로벌시대 국제흐름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즉, 개별 회사의 재무상황보다 실제적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기업집단의 미래성장성, 지배구조, 재무상황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게 글로벌 트렌드"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삼성에 적용하면 '합병 이후 삼성그룹 전체의 기업가치 상승은 삼성물산의 주가 하락분을 상쇄하고도 남으며, 이는 합병의 시너지 덕택'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지분율 4.2%)와 삼성생명(지분율 19.2%)의 지분가치 상승분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의 합병찬성은 '신의 한수'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이재용 체제 이후 실현된 삼성전자의 어닝서프라이즈(4분기 9조2000억원 영업이익)는 물산의 지난해 실적에 지분율 만큼 반영된다.
비슷한 주장은 재계에서도 나온다. 중견그룹 CFO(최고재무전문가)인 B씨는 "기업을 하다 보면 한 곳에서 깨지고 다른 곳에서는 이익을 내는 게 다반사인데, 잘 한 곳은 놔두고 손해 본 곳만 문제 삼으면 경영을 할 수 없다"며 "경영이라는 전체 관점을 무시한 사안으로 기업을 압박하면 기업이 움츠러들고 결국 피해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도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검팀이 '합병지원을 부정한 청탁, 대가성'으로 몰고 가다가는 혐의입증이 어려워지거나 법리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도 이 같은 근거에서 나온다.
◆3자뇌물죄 대신 단순 뇌물죄?
특검이 부정한 청탁을 전제로 한 제3자 뇌물죄 대신 단순뇌물죄 적용도 검토하는 것은 이처럼 혐의입증의 난이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 뇌물죄는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만 입증하면 된다. 박대통령의 직무범위는 국정 전 분야에 걸쳐 있어 일견 뇌물죄 적용이 용이해 보일 수 있으나, 삼성의 최씨에 대한 지원이 실질적으로 대통령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대통령과 최씨가 경제적 공동체 관계였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공은 삼성이 아닌 특검팀과 대통령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친인척 관계도 아닌 성인이 경제적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그리 쉽겠느냐"며 "특검이 마치 결론을 내려놓고 여기에 짜 맞추려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여의도의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법조권력이 너무 세져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며 "기업이 어려우면 인수합병(M&A), 사업양수도 등을 통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데 나중에 검찰에서 문제 삼을까봐 거래를 취소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배임죄가 기업 활동을 발목잡고 있다"고 지적하며 "재계는 물론 증권시장도 삼성 건이 어떻게 처리될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 보유 삼성 계열사 지분 현황
회사명/지분율(%)/금액(억원)/
1.호텔신라/9.75/1,779
2.삼성전자/8.96/23,6000
3.삼성물산/5.78/14,088
4.삼성SDI/8.19/6,617
5.삼성ENG/5.02/146
6.삼성전기/9.32/3,536
7.삼성증권/8.15/2,068
8.삼성화재/9.11/11,566
9.삼성생명/5.0/1,120
10.에스원/6.82/2,322
11.제일기획/9.20/1,778